백투더소스 캠페인 단상
어떤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추억

capcold님께서 '백투더소스 캠페인: 출처를 중시하는 습관'이란 캠패인을 시작하셨다 (캠페인 링크).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백투더소스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신 분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조직적인(?) 호응을 보여주시는 듯 하다. 필자도 이번 캠페인에 한줄 글을 보태고자 한다.

우선 필자가 경험한 예전 얘기를 하나하겠다. 이건 sonnet님의 오늘 포스팅 말미에 붙어 있는 '전문가 블로그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라는 포스팅(포스팅 링크)과 capcold님의 백투더소스 캠페인에서 동시에 영감을 받아 옛 기억을 떠 올린 거다.

2007 년 3월 말이었다. 당시 소위 먹물깨나 먹었다는 사람들에게 대유행이 있었는데 그건 '노무현 까기'였다. 각양각색의 전문가들이 다들 자신의 전공분야를 이용해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던 시절이다. 그 중에 대표적 논객으로 현진권 아주대 교수가 있었다.


현진권 비서관 사진: 시사IN 고제규 기자 기사에서

현교수는 2007년 3월 20일 서울 중구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서 재미난 발언을 한다. 뭐 길게 얘기하기보다 간단히 요점만 정리한 도표를 첨부하겠다.


당시는 한창 종부세로 부동산 부자들의 반발이 심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양도소득세라면 몰라도 보유세 비중이 우리나라가 워낙 낮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론적 반론이 없던 차에 현진권 교수는 부동산 부자들과 한나라당이 좋아할 참신한(?) 신무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즉 보유세를 소득수준으로 나눈 것이 다. 그러니 당장 미국, 일본과 격차가 확 줄어 들었다. (좌측 도표) 또한 PIR 이라고 주택가격/연소득 을 표시하는 지표를 이용해서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한국, 특히나 서울의 경우 미국, 일본 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결국 체감 주택보유세 부담이 월등히 높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 기사 출처).

언듯보면 꽤나 논리정연한 듯 한데...뭔가 이상했다... 필자가 미국에 사는데 "소득대비 보유세 부담이 저렇게 차이가 없던가?" 하는 아주 기초적인 의문 말이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 봤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 보려해도 도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될지 정말 막막했다. 현진권 교수는 국제적 저널에 꽤 왕성하게 투고를 하는 현역 학자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위의 자료는 참고문헌이 전혀 없었다.

당장 우리나라 소득대비 보유세 비중3.5%라 는 저 수치의 정체가 묘연했다. 결국 필자는 2006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계정보고서에서 가처분소득(471.5조원)을 구해서 당시 재경부에서 발표한 2006년 재산세+종부세 총액(4.3조원)을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은 소득대비 보유세 비중이 0.91% 였다. 현진권 교수의 주장과 3.8배가 차이가 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소득대비 주택 가격 비율, 즉 PIR이 미국과 일본은 저렇게 낮고 한국만 유독히 높은 건지...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시명
PIR
서울
8.8
LA
10.4
마이애미
7.6
뉴욕
8.4
샌디에고
8.9
샌프란시스코
8.0

미국 대도시들의 PIR 자료를 구해 비교해 보니 서울이라고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관련 자료 출처)

아무튼 현진권 아주대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 대도시들의 PIR 수치는 서울과 대동소이했다. 규모로 보나 인구 밀도로 보나 서울은 서울급의 대도시들과 비교하는 것이 옳다. 미국 로키산맥 골짜기의 시골 동네 판자집 가격까지 포함된 전체 미국 PIR과 서울 PIR을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는 현진권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모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출처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있으니까. 특히나 소득대비 보유세 비중의 경우 현진권 교수가 무슨 수치를 근거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정체 조차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상대는 학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현역 학자였다. 그것도 정책토론회에서 실명을 걸고 발표한 내용이다. 바로 비판 글을 올리기는 부담스러웠다. 일단 이메일로 근거를 물었다.

일반인들에겐 무례하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물/의학 분야에서 너무나 당연한 관행이다. 상대가 발표한 내용에 의문이 들면 당연히 이메일로 질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상대가 노벨상을 받은 대학자라고 해도 대개 사소한 이메일도 반드시 답장을 한다. 자신이 직접 담당하지 않은 실험의 경우 해당 실험자를 직접 연결시켜 줘서 의문을 반드시 해소해 준다.

두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필자가 요구하는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발뺌만 지속적으로 했다. 필자는 현진권 교수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는 확신이 섰고 서프라이즈에 다음의 글을 기고했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님의 보유세 유감에 대해서
서울과 LA, 뉴욕의 비교
(본문 링크)

작은 언급 하나에도 관련 근거의 링크를 달아야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현역 대학교수이자 학자인 현진권  교수가 대중 앞에서 발표한 내용, 그것도 각종 보수지에 대대적으로 홍보되어 나간 주장이 사실은 학문적인 백그라운드도 하나 없이 그나마 편협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엉터리 주장이었다는 것과 저런 양지의 인물이 자신의 명예를 내걸고 중앙지에 실은 내용도 진실과 거리가 멀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이후 어떤 언론에 어떤 유명인이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하던 반드시 출처를 챙겨보고 원전과 비교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경솔하게 내뱉은 말들이 사실은 착각에 근거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본인 자신도 늘 실수와 착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출처와 원전을 옆에 끼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일 전에 '환경이 도덕관이 미치는 영향'(링크)이란 글을 썼다. 영국 프리머스 대학의 심리학과팀의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자신은 차가운 도덕관과 이성으로 일관되게 도덕적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손을 씻거나 아니면 책상위가 청결한지 아닌지 정도의 변화에도 나의 판단과 도덕적 기준이 바뀐다. 하물며 부실한 단기 기억력을 바탕으로 "감"에 의존해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필자의 블로그에 쌓여가는 글들을 볼수록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capcold님의 백투더소스 켐페인이 보다 널리 퍼져 블로그스피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주류 학계의 학자들이 대중매체에 자신의 주장을 표명할 때도 폭넓게 인정되는 기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사족 1: 결국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올 2월에 청와대 입성의 꿈을 이룬다.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되었다. 그런데 개버릇 남을 줄리가 없다. 최근 시사IN에 따르면 논문표절 의혹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심한 말까지 듣고 있다.

"가위와 풀로 쓴 논문"

아주대 자체 조사 결과로는 표절이 맞다고 확인되었다는 보도이다. (시사IN 기사 출처) 시사IN이 보도한 표절 6편 말고도 추가로 의심받고 있는 부분이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용과 출처표기를 하지 않고 타인의 논문을 베낀 부분들이 수도 없다. 역시 일회성 실수는 아니었나 보다. 딱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곳으로 간 것 같다. 논문 표절이나 부동산 투기 경력자가 아니면 인선 명단에도 못 올라가는 곳이 청와대가 아니던가? 정말 가지가지한다.

하긴 생각해 보면 현진권 비서관은 충분히 억울할 수도 있겠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정진곤 교육문화수석 등이 모두 논문 표절 의혹을 받았지 결국 흐지부지되고 지금 다들 청와대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족 2: 당시 현진권 아주대 교수님과의 이메일 교환은 영어로 이루어졌다. 이상하게 합리적인 한국분들도 전화통을 붙잡고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주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토론이 삼천포로 빠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다. 반대로 영어가 외국어라는 언어적 장벽이 있어서 인지, 많은 한국분들이 영어로 의견 교환을 하면 잡소리나 헛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내용만 묻고 답하기에는 영어는 참 좋은 도구인 것 같다. 지금도 당시 교환한 이메일은 필자의 이메일함에 잘 보관되어 있다. 혹시라도 현진권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이 포스팅에 불만이 있다면 언제고 퍼와서 공개할 의향이 있다. 그나저나 이런 논문 표절 학자출신이 "시민사회"비서관을 하는 건 또 뭔가? 이명박 정부 눈에 '시민사회'가 뭘로 보이는지 대충 감이 오긴한다. 인재풀이 그렇게 좁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