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왕자와 이정연 씨 그리고 이명박 씨
대한민국을 바꾸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2007년 2월 23일 서프에 올린 글입니다.
그러니까 작년 4월 24일에 더 타임즈 (The Times)에 아래 기사가 난 걸 본 게 처음입니다. 영국에서 해리 왕자를 이라크 최전선에 파견할지 말지를 갖고 난상토론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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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참 인상 깊었던 건 우리로 치면 예전 “궁’이란 드라마에서 주지훈 씨가 연기한 가상 대한제국의 왕자 정도 되는 인물이 해리 왕자입니다. 후속드라마인 ‘궁S’야 완전히 망가졌지만 그 전편인 ‘궁’은 인기가 제법 좋았죠. 한번 보실까요?
아래 사진은 거의 9년 전 사진입니다. 아직 앳된 해리 왕자가 캐나다를 방문할 때, 해리 왕자를 환호하는 한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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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2006년 봄 당시만 해도 아직 해리 왕자의 이라크 파견이 현실화되기 전인데도 영국 왕실과 국방부 쪽에서는 해리 왕자의 파견에 부정적인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했죠. 파견 자체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라크 쪽 반군들의 공격 목표가 되어 오히려 해리 왕자 자신은 물론 그 휘하의 병사들을 더 위태롭게 하지 않겠냐는 주장이었는데.
거기에 대해 해리 왕자는 아주 강경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자신의 동료들과 어디를 가든 함께 갈 것이고, 만약 자신이 최전선에 배치되지 않을 경우, 아예 사퇴를 해 버리겠다고.
이런 영국 왕실과 국방부, 그리고 해리 왕자 자신간의 공방 속에서도 작년 한해 해리 왕자의 훈련 과정은 착실히 진행이 되어서 드디어 오늘 해리 왕자의 이라크 파견이 최종적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부시의 푸들이라는 블레어가 이라크로부터 영국군을 일부 철수하기로 결정한 발표와 함께 나왔으니 미국 쪽에서는 김이 팍 샜겠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의 npr 뉴스에서 보니 우리나라도 이라크에 막대한 병력 (2100명)을 파병한 나라로 보도가 되더군요. 아무튼….
이번 해리 왕자의 파견을 결정한 영국 국방부의 고민도 옆에서 지켜보았고 최종적인 결정이 난 이후 더 타임즈에 올라 온 기사와 토론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중동처럼 왕자가 위험하니 어쩌니 하는 호들갑보다는 차분하게 현재 왕자를 지켜줄 것은 수십 명의 보디가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하더군요.
즉 그의 안전은 그의 부하들과, 그가 책임을 맡은 씨머터(Scimitar) 정찰용 장갑차, 그리고 위협에 직면했을 때 그가 발휘할 전술, 마지막으로 적군의 위치와 의도를 파악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달려 있다는 기사를 쓰더군요. 하지만 제목으로 “왕자의 안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보장도 없다”라고 뽑았듯이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별한 보장이나 혜택은 없을 것을 강조하더군요. 다시 말해서 안전한 참모본부 책상머리에 앉아 6개월의 파견 기간을 보내게 할 계획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왕자의 위치가 드러날 경우 위험이 따를 수도 있으니 파파라치들이 이라크까지 따라가지 못하게 적절한 조치가 뒤 따라야 할 것이라는 의견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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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접할 수 있는 영국 쪽의 매체는 BBC와 더 타임즈뿐입니다. 따라서 영국내의 세세한 분위기나 의견을 읽을 도리가 없죠. (예전에 보니, 유럽 쪽에도 수많은 서프 눈팅 분들이 계시더군요. 직접 영국쪽 분위기나 의견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쪽 더 타이즈 기사에 올라온 토론 내용을 보면서 추측을 해 볼 따름입니다. 대개 차분하게 별일 아니라는 의견이 주류더군요. 해리 왕자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즉 자신의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젊은이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인데, 왕자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는……
무덤덤한 건지 아니면 정말 영국 국민들의 내공이 삼천갑자라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건지 솔직히 부럽기는 부럽더군요.
잠시 옆길로 새자면…… 해리 왕자가 소속된 곳은 영국군 최대의 명문인 ‘더 블루스 로열스’ 연대의 기갑 정찰대입니다. 그가 운행을 책임진 정찰용 장갑차가 바로 위오른쪽 사진의 ‘씨머터’이죠. 3인용 장갑차로서 주로 정찰용으로 사용되도록 영국에서 개발된 물건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씨머터’라는 이름입니다. 이게 주로 중동 쪽에서 많이 쓰이는 언월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사진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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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처음 이 장갑차를 개발할 때, 이라크로 쳐들어 갈 목적으로 개발한 것도 아닐 텐데, 90년대 중반에 개발된, 이 중동 지방 칼 이름을 딴 장갑차를 타고 영국의 왕자가 이라크로 파견된다는 게 참 재미있기도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회창 씨의 아들 이정연 씨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는 당시 대법원 판사였던 이회창씨의 장남으로 179cm의 키에 45kg 이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 받았죠. 2002년 8월에는 한나라당이
정연씨 이름 앞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 것", "검찰의 공식발표가 아니면 보도하지 말 것", "병역비리의혹 사건 보도와 관련해 이정연 씨의 얼굴을 내지 말 것...."
이라는 내용의 소위 ‘협조공문’을 국내 4개 방송사에 발송했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대장이 벌인 일이 얼마나 쪽 팔린 일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으니 할 수 있는 짓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겨우 5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더군요. 2002년이라면 김영삼, 김대중 양대 문민정부에 의한 통치가 10년이 다 되어온 시점인데도 당시 한나라당은 예전 5공화국 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시키는 작태를 벌였으니… 아무튼 특이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집단인 건 틀림이 없는데…
이 두 인물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 그리고 당사자들의 모습을 보며 찹찹한 마음과 함께 우리나라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오늘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영국은 왕자까지 이라크 최전선으로 보내는데 한국의 주류 사회는 뭐냐, ‘신분에 따른 책임도 갖추어라’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뭐.. 이런 흔해 빠진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비록 이회창씨와 그 두 아들들은 우리나라 역사의 진보라는 수레바퀴에서 악역을 맡았지만 이회창씨의 두 차례의 낙선이 남긴 교훈은 우리 사회에 크나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얼마 전 현재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고 있는 강재섭 의원과 그 아들 강병수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 체육학과 재학 중에 ‘척추분리증’이란 병이 발견되어서 병역면제처분을 받았는데 자원해서 입대신청을 했고 몇 차례의 병무청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입대를 자원해서 결국 4급 공익요원으로 (해군에 자원입대 한다고 하더니 -.-;) 군복무를 마치게 되었다는 얘기죠. 결국 ‘이회창 학습효과’ 인 셈이죠. 물론 강재섭 의원만 그런 건 아니고, 이제는 당권 정도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자식들 군대문제는 알아서 (?) 챙기는 문화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전 기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이룬 건 다름 아닌 우리 국민들의 손이었습니다.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후보가 2번이나 연거푸 자식의 병역문제로 낙마하는 걸 보고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던 정치인들의 의식을,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스스로 바꾼 거죠.
이제 다시 대선의 해 입니다. 등장인물들도 전부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죠. 다행이 이명박 씨나 손학규 씨 모두 본인이나 아들들의 병역 문제는 깨끗하더군요. 이명박 씨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역시 노통의 아들처럼 사병으로 군대를 가서 병장 계급 달고 제대했고 손학규 씨는 아예 아들이 없지만 본인 스스로 35개월 사병 생활 끝에 병장 만기 제대를 한 인물입니다. 이명박 씨의 경우 건강 때문에 병역이 면제되었지만 당시 이명박 씨의 생활상을 아신다면 돈이나 외부 압력에 의한 병역 면제는 꿈도 꿀 수 없으니 저는 따로 뭐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명박 씨에 대해서 작은 딴지를 걸어봅니다. 지금까지의 보도 중에서 당시 법원의 판결이 난 부분만으로 아주 보수적으로 판단을 해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다 비용지출과 함께 내역을 축소하는 위장 보고, 그리고 그 위장 보고를 폭로한 전 보좌관의 해외도피 사주….
저는 생각보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낮은 사람입니다. 적어도 이명박 씨 정도라면 도덕적이라는 측면에서 대통령 후보의 자격이 안 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지난 10년간 여러분의 손으로 투표를 한 결과가 이끌어낸 우리나라 정치계의 의식 변화를 직접 목격을 하셨다면, 이번 대선에서 여러분의 의견이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정치판, 그것도 선거 운동과 관련해서 돈 씀씀이에 대한 정치인들의 의식과 정치인의 거짓말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치인 스스로 바꿀 또 다른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노통을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분들을 가끔 서프에서조차 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분들이 잘라버리고 싶다는 그 손가락으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의식은 확실히 바꾼 셈이니… 웬만하면 그 손가락 그대로 쓰시고 바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 손가락으로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에 대한 인식과 지도자로서 거짓말에 대한 인식도 바꿀 기회를 만드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