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의 예수

지금이야 예수쟁이가 되어 참 유난스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학생 시절.. 난 참 지독하게 예수쟁이들을 싫어했다. 나중에 예수를 영접하고 꼴통 예수쟁이가 되어서도 한동안 우리나라말로 된 성경책과 찬송가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아 참 오랜 기간 고생스러워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아주 고전적인(?) 표현들을 들을 때면 그때 생각이 나서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대학시절 예수랑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우연히 오랜만에 '금관의 예수'를 듣게 되었다. 요즘 운동권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80년대초까지는 대학가에서 참 많이 부른 곡이다. 지금이야 더 이상 망가질 곳도 없어 보이는 김지하지만, 당시 김지하의 시에 김민기의 노래가 어울어진 이 곡은 꽤나 대학가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사실 이 노래를 부르며 예수를 떠올려 본 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1. 얼어붙은 저하늘 얼어 붙은 저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주를 이처럼 애타게 찾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겐 고통당하는 이들의 모습만 떠올랐다. 이들의 고통에 함께 울고 계신 예수의 모습이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모레면 아기 예수가 오신 날이 돌아온다. 예수는 또 이렇게 삶이 고단한 이들과 차디찬 겨울 아스팔트 바닥에서 함께 울어주신텐데....

올해 교회의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유난히도 화려하고 따뜻하게 보인다. 과연 이런 화려함과 따뜻함 속에 예수의 자리가 있을지...


P.S. 차라리 대통령과 총리가 예수쟁이라도 아니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