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다짐하는 사자성어: 狗猛酒酸(구맹주산)

연말에 한해의 블로그 활동을 돌아보고 또 내년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에 그만인 것이 새해를 다짐하는 자신만의 사자성어를 골라보는 것일 겁니다..

저의 작년 사자성어는 토적성산
(土積成山)(링크)이었습니다. 작은 일에 순종하자는 의미로 2009년에 너무 거대담론만 붙잡고 진을 빼지 말자는 의도였는데 얼마나 그 각오에 충실했는지는 솔직이 자신이 없습니다.

몇 일 남지 않은 올해는 참으로 제게는 다사다난했던 한해였고 존경해마지 않던 두명의 정치지도자를 보내야하는 아픔이 있던 한해이어서인지 차분한 글쓰기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 봅니다. 몸은 이역만리 타향에 있지만 늘 조국을 향한 마음은 간절하기 짝이 없는 이민생활입니다. 마음이 간절해서 그런지 나라 굴러가는 모습에 염려도 많습니다. 이렇게 마음만 바쁘고 거대담론에 자꾸 시선이 가다보니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에게 쏟는 관심의 분량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지인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했었는가 점검해 볼 필요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새해의 사자성어는
狗猛酒酸(구맹주산)(뜻 풀이 링크)으로 정해 보았습니다.

내용은 사나운 개가 술집의 술을 시게 만든다는 말이죠. 쉽게 얘기해서 술맛이 좋은 주막이라도 개가 사나우면 손님들이 발길을 끊는다는...


이 구맹주산이란 사자성어는 주로 현역 정권에서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측근을 비판하는 정치계(링크1, 링크2)나 고객만족을 중요시하는 경제계(링크) 혹은 구직자들을 대하는 인사담당자들(링크)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구맹주산을 제 기도와 신앙... 그리고 제 주변 지인들에 대한 제 언행.. 즉 태도에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예수 믿고 기도에 맛을 들이기(?) 시작할 즈음이 되면 내면생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집니다. 즉 밤낮 '뭐 해 달라거나 치료해 달라거나'하는 기도에서 한단계 더 차원이 높은(?) 기도를 하게되죠. 그런데 이 차원 높은(?) 기도가 가끔 현실 생활과 매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렇게 예수쟁이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 이미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그 위험성을 잘 설명해 줬는데요...  가령 이런 것들이죠.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등한시한 채 가장 어렵고 영적인 의무에만 마음 쓰게 하거라. 명백한 것을 무서워하며 소홀히 여기는 인간의 특성은 정말 쓸모가 있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것까지 막을 수 없다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적어도 그 기도가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은 있지. 고도로 영적인 기도만 줄창 읊어대게 하거라. 어머니의 류머티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그 영혼의 상태만 가지고 노심초사하게 만들라구....(중략)

   문명생활에서는, 글자만 놓고 보면 아무렇지 않은 말인데도(단어 자체는 공격적이지 않으므로)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말투로 사용하면 마치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는 듯 위력이 생기는 말들을 통해 가족간의 증오가 표현된다....(중략)... 각각 이 두 바보에게 일종의 이중잣대를 주는.... (중략) 어머니한테는 제가 한 말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 주고 실제로 한 말만 가지고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머니가 한 말의 어조며 전후맥락이며 숨은 의도까지 꼬치꼬치 따져서 최대한 과민하게 해석하고 반응하게 하거라. 물론 어머니 편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게 해야지. 그러면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각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굳게 확신하거나,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확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등을 돌리게 될게다.(중략)

   '저녁 언제 먹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엄만 괜히 난리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어떤 것들인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일단 이런 버릇을 잘 들여 놓기만 하면, 자기가 먼저 불쾌한 말을 해 놓고서도 상대가 언짢은 내색을 한다고 도리어 서운해하는 유쾌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3장, 26~30쪽)

C.S. 루이스의 이 책 내용이 좀 어색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게 '스크루테이프'라는 삼촌 악마가 조카인 신참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라 그렇습니다. 한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신앙이란 다리를 놓고서도 어떻게 악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절묘한 비유이죠.



연말이 다가오는데 곰곰히 제 자신의 기도를 반성해 볼 기회를 가져봅니다. 정작 실질적인 면에서 저의 도움이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제 땀방울을 더하기 보다는 스크루테이프가 언급한 '고도의 영적인 기도'만 해댄 것은 아닌지 하는... 더불어 주변에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불편함을 전달한 적은 없는지...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그보다 더한 짓을 하는 이중잣대는 없었는지....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얼마나 제 주변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는지....

온라인상에 글을 쓰다보면 논쟁이 붙기도 합니다. 타인의 무례한 표현에 늘 불쾌해 했었는데.. 정작 저 자신은 미묘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속을 긁어 놓고는 상대방이 아무 이유없이 언짢은 내색을 한다고 투덜댄 적은 없는지도 반성해 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일테고요...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집안에서 아내에게 이런 이중잣대를 가장 많이 들이댄 것 같습니다.

새해는 제 안팎의 사나운 개를 치워버리는데 주력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일을 스스로 찾아서 바로바로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