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블로그 주인장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환자가 있습니다. 물론 담당의사는 최선을 다합니다. 아니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의사의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먼 말?
자신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고 담당 주치의는 생각하지만, 동료 의사가 볼 때는 ‘아니올시다’라는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성질 개 같아도 실력 있는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이지, 선한 의지만 가지고 달려든다고 환자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환자가 죽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떳떳합니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환자를 맡겠다고 달려든 목적이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지만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은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너무나 당당하지만, 글쎄요. 환자 보호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환자의 목숨보다 의사라는 자신의 자존심을 더 중요하기 여기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동료 의사들도 압니다. 그가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준으로 최선을 다 했을 뿐, 의사들의 기준으로 보면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자를 전담한다는 것은 병을 고쳐서 환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목적을 인식한다면 그는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죽어버린 환자에 대해서 case conference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당당합니다. 최선을 다 했다고. 그는 단 한 번도 환자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한 적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습니다. 그저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죠.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로 환자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혼자의 목숨보다는 자신의 품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인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도 자신의 마음이 받는 상처가 더 크기 때문이구요.
선의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입장에서의 선의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선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를 자신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타인의 눈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은 잘 해보려고 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오케이입니다.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겠어요?
우리 모두 타인에게 상처 주는 표현은 삼갑시다.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대통령도 이 범주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도 그의 기준으로는 자신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여길 테니까요. 어차피 내 가족 아니잖아요. 타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품위에 손상을 입을 수는 없잖아요. 내 말 틀려요?
제가 그동안 문제 삼았던 주제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호남차별 문제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것과 관계없이 현 난국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글을 쓰다 보니 주제를 혼동하는 경우도 가능하겠습니다.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크게 혼돈할 부분은 없다고 저는 생각하지만요.
한나라당보다 더한 세력이 정권을 잡아도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만 한다면야, 정권 다시 찾기 위해서 광분할 필요까지는 없을 겁니다. 이건 호남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노무현의 방식으로 5년을 이끌었고, 그 방식의 결과가 지금이라고 보는 저로서는 그 부분에 관하여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다시는 같은 실수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여정부는 실패했다는 거죠.
물론 참여정부는 결코 실패한 정권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님도 그 부류에 들어갈 것이구요. 노무현 대통령은 비극에 가셨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무수히 많은 작은 노무현들이 같은 실수 반복하려고 작정이나 한듯이 예전의 방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Case conference는 그런 의미입니다.
제가 수긍할 수 없는 방식을 끝까지 고집하는 부류들의 근저에 깔린 무의식을 저 나름대로 분석했으며, 대한민국보다는 자신의 고상함을 더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대상들은 인정할 수 없겠죠.
실패라고 인정하면서 그 길을 다시 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하자면 지금도 노무현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참여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지금의 상태를 내심으로는 그다지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패가 자명한 방법만을 강조하는 경우에는요.
어느 대통령이나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잘한 점도 있고, 못한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총체적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경우 실정 부분도 어느 정도는 여유롭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정권이었다고 평가받는 경우에는 잘한 점보다는 못한 점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했다고 판단되는 부분만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게 그 부분은 그 부분대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것을 덮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될 때도 많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부끄러운 부분도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냐, 노무현을 위해서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볼 것이냐의 문제가 됩니다. 여기에서 노무현을 위한다는 이야기를 작은 노무현들에게 적용하면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의미가 되겠죠.
결코 우아한 싸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겨야 하는 싸움입니다. 우아할 수 없는, 하지만 이겨야 하는 싸움을 고상하고 품위있게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이기고 싶으냐고 묻는 겁니다. 사실은 이미 이긴 거 아니냐고 묻는 것이기도 하구요.
얼마 전에 상원의원 선거가 있었죠. 매 2년마다 정규적으로 치르는 선거인지, 해당 주만 뽑는 보궐선거인지는 모르겠으나, 38년 만에 공화당이 이겼다면서요. 원래는 민주당 텃밭이었다는데.
국내의 뉴스에 나온 내용이라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의료제도를 개선할 경우 세금이 오를 것을 염려한 사람들이 민주당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어느 집단이나 위아래로 독도는 있기에 그런 예외적인 케이스를 대표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균적인 성향으로 보아야겠죠. 사실 선거란 쪽수싸움이기에 예외적인 사람들의 영향력이 대세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단지 옳다는 이유가 해결방법은 아니라는 의미죠.
평균적인 사람들의 그런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단지 옳다는 이유로 밀어부치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 제가 지겹도록 주장했었죠.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상함을 다치기 싫어서 멋있는 방법만 고집해도 정치가에게는 큰 피해 없습니다. 물론 그런 정책을 싫어한 국민들이야 당해도 싸지만, 그래도 그런 국민들을 대통령은 버려서는 안 되죠.
모든 오물은 자신이 다 뒤집어쓸 테니 국민들은 그 과실이나 즐기라는 태도로 나가는 지도자는 자신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좋은 결과가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자신의 명예에 손상이 간다면 그 방법을 거부하는 지도자라면 자신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구요.
두 경우 모두 일종의 선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악한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강조하는 선의가 내용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선의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선의와 타인들을 위한 선의를 구별하자는 것이고, 저는 후자를 선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국민들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적어도 한 나라를 일정기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가 웃긴 게, 노무현이 옳기 때문에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옳기 때문에. 문제는 노무현을 거부했다는 것이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로 인한 장기적인 결과가 너무나 치명적이니까요.
더욱 참담한 것은 아직도 국민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도 한나라당이 먹을 거라는데 저는 올인 합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을 현명하게 판단했다면, 참여정부를 거부하지는 않을 정도로 속도를 조절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판단력의 문제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오판을 했다는 것이고, 그 이유도 국민들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으로만 모든 것을 재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도 자신의 명예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지노선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도 크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잘못 한 거 없습니다. 그러기에 혹시 이미 이긴 거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지적해 주신대로 case conference를 하죠. 그럼 그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충분한 정도의 의료서비스가 제공이 되었는지가 파악이 되겠죠. 단순히 주관적인 [최선]을 다했느냐 안했느냐의 입씨름이 아니고 말이죠.
하늘나라에 가도 다다르지 못할 지고지순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아무리 입이 부르터라 비판을 해 봐야 정작 우리나라의 리버럴의 지지도는 대략 5~10% 정도라고 하죠 (경향-진보정당의 고민).
아크로의 일부 호남리버럴도 결국은 국민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5~10% 중에 일부에 불과합니다. 자신들의 입으로 지난 참여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이미 선거를 통해 평가받았고 그 평가는 실패라고 주장한다면 동일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대입해 봐야겠죠.
제가 지난 참여정부에서 배운 건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잣대로 남도 평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성가셔도 길게 보면 그런 잣대를 사용했을 때, 털끝만큼이라도 상황이 개선되어 나갈 겁니다.
호남차별.... 참 쉽지 않은 이슈이기는 하지만 유시민 욕하고 참여정부 욕한다고 해서 호남의 차별이 개선될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호남에 우호적인 비호남출신들에게 학을 떼게 만들 뿐이죠. 물론 여기서 학을 떼는 대상은 호남전체가 아닌 스스로를 호남리버럴이라고 생각하는 일부일테지만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의 노상전도를 아시죠? 저 짓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싫어하는지 모르나? 싶은 그 행동말이죠.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노상전도는 1 사람의 전도성과를 얻기 위해 5 사람에게 기독교에 거부감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호남리버럴이 딱 그 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