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대해

 

그들에게도 시간을


2008년 1월 1일 서프에 올린 글


사람들은 이명박이 추진하는 민간의료보험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만
, 이명박 진영도 바보는 아닙니다. 의사나 일반 국민 어느 쪽으로부터도 욕 먹을 짓을 당분간 하지는 않을 겁니다. 특히나 4월 총선 전까지는 쉽사리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낄 정책을 꺼낼 이유가 없죠.

 

따라서 민간의료보험이 부자들만을 선택적으로 가입시켜 현행 의료보험체제에서 열외시키는 식으로 추진되지 않을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현재 계획중인 각종 서민 생활비 감축 정책으로 떨어져나가는 세수 부족만 해도 제 정신인 정부라면 이를 악 물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텐데 부자들을 열외시켜 결국 정부 재정으로 부족분을 메우게 하거나 기존 일반 국민들의 부담 비율을 높이는 식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나갈 하등의 이유가 없죠.

 

그리고 의사 분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더 늘어나야 되는 건 맞지만 그 역시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의사들에게 유리한 제도로 무장된 미국 의료계에서 조차 의사들의 단위 시간당 진료 강도는 점차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환자 한 명에게 15분이 주어지죠. 그런데 그 시간 안에 진찰을 도저히 끝낼 수가 없습니다.

 

아침 첫 시간에 예약을 해야 겨우 바로 의사를 볼 수 있지, 오전 11시 예약만 해도 운이 좋아야 의사를 12 30분쯤 볼 수 있습니다. 하루의 마지막 예약의 경우 2-3시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죠. 결국 미국도 의사들의 노동(?) 강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문의 같은 경우는 첫 진료 전에 아예 Nurse Practitioner (NP, 널스 프랙티셔너) 라고 해서 특별한 교육을 추가로 받아서 진단을 내리고 처방전을 쓸 수 있는 간호사를 한번 통합니다. 즉 전문의의 진료 시간을 최대한으로 축소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조처하죠. 그리고 아예 정기적으로 중간 점검하러 가는 경우에는 전문의는 보지도 못하고 널스 프랙티셔너만 보고 오기도 합니다. 물론 필요한 의료 서비스는 거의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문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널스 프랙티셔너가 있는 반면, 정식 의사가 상주하기 힘든 시골 동네나 아니면 좀 살벌한 분위기의 대도시 다운타운에서 근무하며 환자들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Physician Assistant (PA, 피지션 어시스턴트) 라고 해서 생물학이나 아니면 약학, 간호학 같은 의료와 조금은 연관된 걸로 학사학위 이상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2년에서 2년 반 정도 의학 교육을 시킨 다음에 이들로 하여금 정식 의사의 감독하에 독자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게 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실제로 의사가 10명 정도 되는 소아과 병원의 경우 1-2 사람 정도는 PA랍니다. 경험이 많은 PA의 경우 의대를 막 졸업한 초짜 의사보다 오히려 애들의 상태를 잘 짚어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 드렸던 대로 널스 프랙티셔너처럼 다운타운이나 시골 동네에서 개업을 하기도 하죠. (실제 정식 의사가 바로 옆에 붙어서 감독을 할 필요는 없고요. 하지만 전화상으로라도 감독의 형태는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꾸 의사의 역할을 보조하는 자리가 생기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의료비를 줄여보자는 정책당국자의 고민 때문입니다. 정식으로 의대를 졸업하고 개업한 의사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유지시키면서도 일반인들에게 돌아가는 의료서비스의 질도 마찬가지로 지켜주자는 거죠.

 

사실 애들 초기 감기나 각종 자잘한 문제들은 이들 NPPA가 봐도 대개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특히나 정식 의사가 진출해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든 지역의 경우 충분히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죠. 아마 우리나라 대도시에서도 의사를 보려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라면 저런 식의 NPPA 진료소도 경쟁력이 있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아무튼 미국 역시 기업들이 매년 급증하는 의료보험비 부담에 허리가 휘니 민간의료보험회사(Blue Cross Blue Schield 같은)에 압박을 가하고, 또 다시 민간의료보험회사는 의사들에게 압박을 가해 지속적으로 진료비를 삭감하죠.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의사들의 진료 수가가 갑자기 증가해서라기 보다는 신약과 신의료 기술이 전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현재 같은 신약 개발과 신의료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계속되는 한 그 추세를 어찌하진 못 할 겁니다.

 

저 역시 대안이나 해결책은 없습니다. 현재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던 별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 의사들의 혜택을 감축시킨 결과 유능한 의사들은 보따리 싸 들고 모두 미국으로 떠나고 그 빈자리를 인도출신 의사들이 메우고 있죠. 인도 의사들이라고 실력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의료보험제도에서 의사들만 조진다고 될 일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에 말씀 드린 미국 제도인 널스 프랙티셔너 (진료 처방 가능 간호사) 나 피지션 어시스턴트 (부 의사) 제도를 도입하면 급한 대로 현행 의료보험 제도에 정부가 털어 넣어야 되는 보조금을 줄이고 국민 부담금을 조금은 낮출 수 있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신약과 신의료기술 개발이 계속되는 한 의료비 증가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장기적으로는 대책이 없다는 말씀이죠. 국민 부담금도 늘어날 테고, 정부 보조금도 줄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의사 분들께는 안된 말씀이지만, 앞으로 의사분들께 돌아가는 혜택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확률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최소한 의료업계에서 의사들과 국민들에게 돌아갈 파이는 매년 확실히 줄어 들 겁니다. 물론 신약과 신의료기술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들이나 연구소는 돈을 만지겠지만, 이들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연구 개발비의 인상에 예전 같지는 못 할 테고요.

 

국민 평균 수명이 지속적으로 늘고 일반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이 지금과 같은 한, 이 문제는 답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무조건 이명박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색안경을 끼고 욕하는 것에 반대입니다.

 

진짜 무림의 고수는 칼을 쉽게 뽑아 들지 않습니다. 평소에 별 이슈가 아닌 것에 허공을 가르는 헛칼질로 힘을 빼고 자신을 노출 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죠. 딱 이거다 싶은 이슈에 한 번의 칼질로 상대의 목을 따 버리는 게 진정한 고수랍니다.

 

전 서프가 시사 정치 이슈에 있어서 그런 고수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5년간 한나라당이 주리장창 노통을 씹어 대느라 현재 국민들의 정책 기대치는 그 어느 때 보다 높습니다. 이명박 진영 역시 인수위 차리기도 전에 벌써 바짝 긴장하고 있죠. 대선 기간 중 강남을 의식해 각종 부동산 규제 조처를 해제하겠다고 설래발을 치던 걸 당선 직후 강남 쪽 부동산 시세가 꿈틀대자 지금은 당선자 대변인이 앞장서서 취소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도 바보는 아니라는 얘기죠. 그런데 서민 생활비 30% 감축 같은 포퓰리즘의 화신 같은 정책이 장기적으로 보면 정부와 국가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동안 노통 정부가 미쳐 챙기지 못하고 넘어가던 자잘한 정책적 대안을 찾아 낼 수 있는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우리 국민들에 꼭 나쁘다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보수진영이라고 부자들과 재벌만 챙기고도 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시절은 끝났죠. 최소한의 면피는 해야 살아 남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모든 노력 하나 하나를 모두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좀 더 그들에게도 시간을 주고 지켜봐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