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경제 성장의 원인들 (1)
베트남전쟁 참전의 효과
1. 서론
최근 한 논객과의 논쟁 중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받았습니다.
저 주장은 박정희가 집권 초반에는 기존 이승명 정부에서 추진해 온 자립경제 확립의 틀에서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가, 65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수출 드리이브를 건 점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저 주장을 접하고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수출 지향정책이 박정희의 경제 업적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에 지도자의 개인적 성향이나 정책 방향이 물론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임 정권의 정책 영향과 외부 환경의 영향도 결코 무시할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내부의 정책 변화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요인은 없었는지, 그리고 있다면 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베트남전쟁의 영향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2. 외부적 요인들
2.1 베트남전쟁
2.1.1 박정희 집권 초의 상황
박정희 집권 이후 61~65년의 특징 중에 하나는 급격한 외환 보유고의 하락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에 의해 제공되던 원조의 감소에 일차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일단 도표를 보시죠.
박복영, 채욱, 이제민, 이근. 이상철, ‘한국 경제발전 경험의 대개도국 적용가능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시면 아시겠지만, 57년에 3억2천만 달러를 기점으로 1965년에는 1억3천만 달러 수준까지 원조액수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박정희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목표 설정과 화폐 개혁의 실패로 인한 경제 혼란, 민정 이양 과정의 정치적 불안들이 모두 함께 작용해 61년 군사 쿠데타 당시 장면 정부가 넘긴 2억 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고는 63년 말에는 거의 1억 달러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수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는 했지만, 당시 대표적인 수출품이던 합판의 경우 원자재 가격이 수출 가격의 90%를 점하는 등 지극히 비효율적인 수출 구조인데다가 수출을 늘릴수록 원자재와 기계류를 더 많이 수입하여야 하는 상황 덕분에 늘 수입 초과인 무역 구조였고 따라서 외환 보유고는 계속 줄어들 수 밖에 없었죠. 결국 64년 박정희가 직접 서독까지 가서 마련해 온 차관 5천만 달러를 포함해서 65년 말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 규모는 겨우 1억 3천 8백만 달러 정도 밖에 안되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외환 보유고의 압박은 결국 경제 개발 계획의 축소와 외환사정이 호전될 때까지 민간 사업에 대한 지불보증 중지 결정이 국무회의에서 나오는 등 만만치 않은 역풍을 맞게 됩니다.
2.1.2 베트남전쟁 특수 규모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전쟁 특수가 가져온 외환 수입의 내역을 한번 보시죠.
정성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영구군비경제’ 경제와사회 2000년 여름호(통권 제46호) 에서 2차 인용
가뭄에 단비라는 표현이 있죠?
63년 말 순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9천3백만 달러까지 떨어졌던 외환보유고가 64년 박정희의 서독 방문을 계기로 서독에서 끌어온 5천만 달러의 차관까지 끌어 모아 65년 말에 1억 3천8백만 달러 수준이 되는데, 여기 베트남전쟁 특수가 거의 2천만 달러 정도를 기여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대규모 병력이 파병 되면서 베트남전쟁 특수에 따른 외화 수입은 눈덩이처럼 늘어나죠. 한번 도표를 보실까요?
정성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영구군비경제’ 경제와사회 2000년 여름호(통권 제46호) 에서 2차 인용
보시면 아시겠지만, 66년 같은 경우 외환 보유액 증가의 60% 이상이 베트남전쟁 특수가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72년까지 베트남전쟁 특수에 따른 외환 수입은 수출 우선 정책의 후유증인 외환 고갈을 막아내는 중요한 방파제가 되었죠.
2.1.3 베트남전쟁 참전과 대미 수출 증가
베트남에서 직접 얻는 각종 용역, 건설, 임금 등의 수입 이외에도 베트남전쟁 참전에 따른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 혜택을 살펴보죠.
정성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영구군비경제’ 경제와사회 2000년 여름호(통권 제46호)
이런 대미 수출의 급격한 증가는 다음의 사항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성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영구군비경제’ 경제와사회 2000년 여름호(통권 제46호)
물론 이와 같은 한국 상품에 대한 미국 시장의 문호 개방은 미국이 공짜로 알아서 제공한 것은 아닙니다. 1966년 11월 당시 상공부 장관이던 김학열씨는 1967년 시작될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며 미국에게 요청한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미 시장 개방에 대한 부분을 살펴 보죠.
Kil J Yi, The US-Korean Alliance in the Vietnam War, ‘International Perspectives on Vietnam’ edited by Lloyd Gardner and Ted Gittinger, 2000, TEXAS A&M UNIVERSITY PRESS p 168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 본다면, (4) 미국 기업들의 대한 투자에 미 정부 보증 확대 (5) 섬유 제품을 비롯한 각종 공산품 농산품의 수입 제한 철폐, (6) 이중 투자 과세 면제.. 기타 각종 경제적 지원 요청들..
정성진 교수님의 논문에 나와 있는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베트남전쟁 참전을 계기로 베트남에 대한 수출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대한 미국 시장을 수출 시장으로 갖게 되었고 이미 69년 이후 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상품의 50%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상품 시장의 부족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예외적으로 유리한 수출 환경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죠.
2.1.4 베트남전쟁 참전과 차관 도입
미국 내수 시장 문호 확대와 더불어 한국 정부는 존슨 행정부에 다음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얻게 되죠.
Kil J Yi, The US-Korean Alliance in the Vietnam War, ‘International Perspectives on Vietnam’ edited by Lloyd Gardner and Ted Gittinger, 2000, TEXAS A&M UNIVERSITY PRESS p 165
즉 차관을 제공해 달라는 요청에 당시 존슨 행정부의 최고 보좌관들이 모두 차관 제공에 동의합니다. 그 이유가 인상적이죠. 박정희가 합리적인 가격에 파병을 하게 만드는 것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도록..
결국 59년에서 65년까지 겨우 7400만 달러에 불과하던 미국의 차관 제공이 66~72년까지 엄청나게 증가하여 13억 달러에 이르게 되죠. 이 13억 달러의 차관은 전체 차관 도입 액수의 43%에 달하는 액수인데…. 이외에도 존슨 행정부는 자신들이 출자한 아시아 개발 은행을 통해 한국에 추가로 차관을 제공하게 합니다. 결국 미국에 의한 직간접 차관 제공은 당시 66-72년 사이에 한국이 도입한 차관 총액 30억 8천만 달러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액수이죠.
이외에도 미국은 각종 농산물의 공여 등으로 추가적인 금전적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런 막대한 차관 제공 등이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불을 보듯 당연한 이야기이겠죠.
2.1.5 베트남참전과 군사원조
베트남전쟁 참전의 대가 중에 하나는 미국의 군사원조 증가를 들 수 있다. 존슨 행정부가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참전을 결정하기 이전인 64년 미국 정부는 이미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경제 원조 이외에도 군사원조 삭감을 통고합니다. 미국의 대한군사원조액은 61-65년에는 8억2천만 달러이다가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인 66-70년 사이에는 16억 8천만 달러로 동일한 기간에 2배 이상의 큰 증가를 보입니다. 도표를 한번 보시죠.
정성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영구군비경제’ 경제와사회 2000년 여름호(통권 제46호)
보시다시피 베트남전 파병 기간 미국이 우리나라에 제공한 군사원조액은 우리 정부의 국방비 지출액보다 많고, 정부 연간 예산의 평균 36%를 차지하는 막대한 액수였습니다. 이런 미국의 군사 원조 덕분에 박정희 정부는 68년 김신조 청와대 기습사건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들의 험악한 대북 환경 속에서도 군사비 지출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그만큼 절약한 비용을 경제 성장에 투자할 수 있었죠.
3. 결론
베트남전쟁 참전 효과는 아주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당시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던 수출 우선 정책이 좌초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수출 대체 정책으로 진화하여 나가는데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참전의 대가로 주어진 각종 외환 수입과 차관도입 그리고 대미 시장 개방 등은 대일 청구권 자금 도입과 함께 박정희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가지는 치명적인 요소, 즉 무역 적자의 고착화라는 부작용에 대한 치료제 역할을 튼실히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시 국제 정세에서 베트남전쟁 참전 요소가 빠졌다면, 박정희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 국가가 특정 시기에 거둔 경제적 성장의 원인을 한두 가지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겠죠. 특히나 정량화가 가능한 베트남전쟁 참전 효과와 달리 정책을 능동적으로 변경한 것의 효과를 과감히(?) 주요 성공 요인이라고 하는 것은 저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울 것 같습니다.
오늘 글은 앞으로 몇 차례 시리즈로 준비해 볼까 생각 중인 60년대 경제 성장의 원인들의 첫 편입니다. 앞으로 이승만 정부의 정책들과 대일 청구권 자금의 역할 그리고 박정희 정부의 부패 문제를 조금 더 언급하고 시리즈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 Aid from America.JPG (60.3KB)(49)
- Foreign Currency Input through Vietnam War.JPG (51.1KB)(42)
- Vietnam Effect and Foreign Exchange Reserve.JPG (38.7KB)(37)
- US Import and Korea Export Growth Rate.JPG (34.0KB)(42)
- Buy America (1).JPG (60.6KB)(45)
- Buy America (2).JPG (3.2KB)(36)
- Korean Expectation - Market.JPG (53.1KB)(42)
- Korean Expectation - Loan.JPG (38.8KB)(42)
- Korean Military Expense and US Military Aid.JPG (27.6KB)(38)
이 정도 정리를 하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박정희 경제 업적의 논쟁에 최소한의 객관적 토론이 가능한 토대가 마련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