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쟁고아 정책


2008년 2월 11일 서프에 올린 글

여러분 두뇌에 '전쟁고아'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떠오르는 영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관련 단어들은?

전 아래 사진과 함께 '해외입양'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6·25 통에 전쟁고아만 10만여 명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폼 재며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이들 대부분 전쟁고아들을 시설이 열악한 고아원을 거쳐 홀트아동복지회 같은 입양 기관을 통해 미국과 유럽 각국으로 입양시켜 버렸죠. 지금이야 홀트아동복지회는 국내 입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등 국내 입양 문화 개선을 위해 참 많은 애를 쓰고 있지만, 당시는 거의 전적으로 국내 전쟁고아를 중심으로 많은 아이들을 구미 각국으로 입양시키는 통로였습니다.

당시 전쟁으로 쑥밭이 된 조국에서 산 사람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는데, 왜 새삼스럽게 그때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느냐고 하실 분들이 계시기도 하실 테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보다 몇 배는 더 쑥밭이 된 북한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시기로 하죠.

6·25 막판에 미군은 북한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감행해서 수력발전소와 저수지 등 사회 간접자본을 포함한 일체의 시설물에 대한 파괴를 실시하죠. 미 공군 사령관을 역임한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장군은 아예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 놓았다'고 공언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상황이 이랬으니, 북한에 발생한 3만여 명 정도의 전쟁고아를 어떻게 처리할지 하는 문제 역시 북한 당국으로서는 남한이 고민한 정도와 비교해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은 문제로 다가왔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북한은 이들 전쟁고아들을 해외에 입양시키는 대신에 동유럽을 포함한 사회주의권 국가에 일정 기간 위탁 교육을 시킨 후 어느 정도 북한 경제가 한숨을 돌린 후 모두 다시 북한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전쟁고아 처리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부족했었는데, 몇 년 전 루마니아에 파견되었던 북한 전쟁고아들과 이들을 인솔한 북한 관리, 그리고 이 북한 관리와 사랑에 빠져 현지에서 양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결혼에 골인한 한 루마니아 여성에 얽힌 사연이 공개되어 비교적 자세한 전말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한번 보도록 하죠.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은 box-TV 프로덕션 김덕영 씨가 연출을 하고 KBS 수요기획에서 2004년 6월 23일 방영된 '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에서 내용을 얻어 왔습니다.

1952년부터 1959년까지 북한은 동구권 각국에 전쟁고아들을 보내 위탁 교육을 시킵니다. 그야말로 비석 하나 제대로 서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초토화된 상태에서, 경제 재건에 한시가 바쁜 북한 당국이 이들 전쟁고아들을 짐이나 골칫거리로 여기지 않고, 그 없는 살림에 인솔교사까지 딸려 사회주의 형제국(?)들에 보내죠.

이들 사회주의 형제국 중에 루마니아를 보죠. 말이 좋아 동구권 국가이지 루마니아 역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줄을 잘못 선 덕분(친독 정책)에 거의 전체 산업 시설과 루마니아가 자랑하던 플로이에스티 유전이 파괴되고, 엄청난 숫자의 젊은이가 전사하고 막대한 민간인 인명피해가 있던 나라죠. 더군다나 대전 후 패전국으로 분류되어 주변 나라에 영토도 크게 빼앗기고요. 그런 루마니아가 동방의 한 작은 나라로부터 3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받아들여 자국 내에 학교도 건립해 주고 선생님도 제공하여 이들 전쟁고아들의 상처받은 심신을 챙겨준 것은 체제를 떠나 앞으로 통일 한국이 마음속으로 늘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구권 국가 내에 설립된 소위 ‘조선인민학교’라는 곳에서 북한에서 파견된 인솔교사와 현지 교사들이 함께 북한 전쟁고아들을 정성스럽게 교육을 시킵니다. 관련 자료를 동영상에서 갈무리한 사진 몇 장을 올려보겠습니다. 루마니아 국립 기록 보관소에 소장된 5분짜리 기록물에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영상물을 퍼 오는 방법을 올라서 그냥 링크를 겁니다. http://www.docustory.co.kr/39 )

영상물에 보시면 루마니아로 온 북한 전쟁고아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교육받았는가 하는 것이 자세히 나옵니다. 동영상 막판에 루마니아 어린이들이 북한 전쟁고아들을 유럽식으로 열렬히(?) 환영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_^)

물론 이 영상물은 루마니아 공산당이 자신들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뉴스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당시 전 세계 공산국가의 모든 홍보 영상물을 100%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이 또한 황당한 노릇이지만, 이런저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더군요.

선전을 위한 쇼맨십이라도 좋으니, 당시 우리 남한에서도 소위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전선에 나가 전사한 장병들의 남은 유가족이나 전쟁 와중에 부모를 잃고 어디 의지할 곳 없이 사회에 내동댕이쳐진 고아들을 위해 이승만 정권이 코빼기라도 비춘 일이 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꼭 이승만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죠. 이후 박정희 정권을 포함한 전체 정권 기간 중에 독립 유공자를 포함한 국가 유공자 가족을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앞장서서 챙긴 적이 없고, 해외입양으로 전쟁고아 문제를 해결한 데 대해 한 번도 문제 제기한 적이 없으니까요. 오죽하면 독립운동 집안은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까요?

반면에 북한의 경우, 이들 동구 각국에 위탁 교육을 시킨 전쟁고아들을 포함해서, 독립운동 기간이나, 6·25전쟁 중에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전사자들의 유자녀들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에서 특별 대우를 받으며 교육되어 북한의 핵심계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일반 고아들도 국가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양육하고요.

물론 나중에 만경대혁명학원은 군과 당의 고위간부 자제의 교육시설로 점차로 변모해가기는 합니다만, 초창기 북한 정권이 이들 전쟁고아들과 국가 유공자 자녀에 쏟은 정성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을 거치면서, 북한 경제가 결딴이 나면서 이제는 고아들에 대한 북한 정부의 지원이 사실 유명무실해졌지만, 한창 북한 경제가 잘 나갈 당시에는 북한 고아원의 아이들은 웬만한 집안 애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시설과 혜택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하였답니다.

제 주변에는 어떻게 북한이 8, 90년대 심한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도 체제 붕괴 없이 견디어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위에 제가 언급한 북한의 전쟁고아 정책이 100% 그걸 설명한다면 이 또한 무리한 해석일 테지만, 저런 식으로 국가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전쟁고아들이나 국가 유공자 자녀들이 북한 사회의 핵심으로 성장하고 이들이 북한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동안, 북한은 꽤나 안정적인 체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결론

종북주의… 다 좋습니다. 북빠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북한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떠는(?) 원자폭탄이나 북한 상공에서 터뜨리면 제트기류를 타고 미국에 방사능 낙진이 떨어진다는 자살 공갈단식 코발트 폭탄 또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포함한 각종 비밀 병기 따위나, 그도 아니면, 위대한(?) 수령 체제라고 떠벌이는 것이 너무나 맘이 아픕니다.

제가 북한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런 황당한 마초적, 전체주의적 가치관에 신비주의적 패배의식에 바탕을 둔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앞장세우느라 미처 챙기지 못하던 가치들, 우리가 소홀히 한 가치관들을 꼼꼼히 챙기던 북한 초창기의 모습에 배울 것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 눈에 비치는 북한은 반쯤 미쳐있는 골통 같은 나라이고 전 국민이 배고픔에 허덕대는 나라일지 모르지만, 북한 역시 우리의 반쪽으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민족의 자존과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름대로 성과와 업적을 이루며 지금까지 살아왔답니다. 가령 남한이 친일 청산에 실패한 후 제대로 역사도 돌보지 않는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던 시절, 북한은 없는 살림에도 이미 1981년 조선왕조실록 번역을 완료했죠. 우리의 경우 12년이나 더 지나서야 완수한 일인데 말이죠.

뭐… 이런저런 어설픈 결론으로 끝내자고 쓴 글은 아닙니다. 국제방의 북빠들의 황당한 친북 주장이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고 극우 보수주의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뿐이란 염려가 되어, 북한이 남한에 비해 가졌던 우월한 도덕적 가치의 일부분을 정리해 봤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죠. 대표적인 것이 문화나 역사일 겁니다.

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통일이 된다면, 북한이 남한 체제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에 반대를 합니다. 북한에는 남한의 자본주의 금전만능 사고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역사적 흔적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통일 한국의 교과서에 우리의 조상들의 반쪽은 전쟁 통에 길에 내몰린 전쟁고아들을 조국이 앞장서서 거두어 챙기고 보살폈다고 씌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한에는 다시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의 정치 집단이 득세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전쟁 후 전쟁고아를 챙기지 못한 이승만 정권 시절처럼 정권 담당자만을 탓할 수도 없죠. 국민 대다수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결정한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 세월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려운 시절이 될 겁니다. 감세와 작은 정부를 외치는 보수 정권이 복지와 교육 과학 기술 분야에 투자를 늘리는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8년간 미국 부시 정권이 말로는 No Child Left Behind 라고 하면서도, 뒤로는 학교 예산, 보건 복지 예산 그리고 과학 기술 분야의 대대적 예산 삭감을 해 온 걸 보시면, 대략 이명박 정부의 앞날이 보이실 겁니다.

무뇌적 친북을 주장하는 북빠들과 종북주의자들, 그리고 반대로 역사에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정치집단이 입법, 행정, 중앙, 지방 권력을 독점하게 될 조국의 현실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시절이 어렵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