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과 새라 페일린 미국판 수첩 공주

자격 미달의 정치인에 대한 소회

어제 점심이 좀 늦었더랬습니다. 거의 3시 반이나 되어서야 병원 카페테리아로 가서 패리 멜트(Patty Melt)라는 햄버거 패디를 식빵 사이에 끼워 넣어 먹는 (광우병에 노이로제가 있는 분이라면 미쳤다고 하실 먹거리죠) 걸 주문해서 식당 TV 앞에 앉았습니다.

화면 가득 다우 지수가 777 포인트나 빠졌다는 뉴스에 간간히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새라 페일린이 나오더군요. 뭔 일인가 싶어서 귀를 세워 듣고 있자니 페일린의 엽기 어록이 줄줄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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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린이 어제 미국 상원에서 부결된 70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에 대한 케이디 쿠릭의 질문에 답변하는 꼴이 예전에 우리나라 대선 토론회 때 전술핵무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답변을 하던 김영삼 대통령을 떠 오르게 하더군요. 좀 배경 말씀을 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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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이 CBS의 간판 앵커인 케이디 쿠릭(Katie Couric)입니다. NBC에서 Today쇼라고 아침 뉴스 겸 토크쇼의 공동 사회자였다가 재작년에 CBS로 옮겨서CBS 저녁 뉴스의 단독 앵커를 2년이나 하고 있죠. 아마 미국 내 언론사에서 여성으로는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언론인 중에 한 사람일겁니다. 이 쿠릭이 페일린을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우선 질문 내용부터.


쿠릭: 페일린 주지사님. 7000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이번 금융위기를 야기시킨 장본인들인 이들 대형 금융 회사들을 돕는 대신에 차라리 중산층들이 의료비, 주택 비용, 자동차 휘발유 값 그리고 일용 잡화들을 해결하는데 써서 경제에 더 많은 돈이 풀리도록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페일린: (생략) 궁극적으로 이번 구제 금융이 하는 것은 경제를 살리는데 필요한 의료 개혁을 염려하는 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생략)– ~~ 또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것이기도 하죠. 경제를 살려 제 궤도 위에 올려 놓는 일 말입니다. 따라서 의료 개혁과 감세 그리고 지출 통제는 감세와 함께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COURIC: Why isn’t it better, Governor Palin, to spend $700 billion helping middle-class families struggling with health care, housing, gas and groceries? Allow them to spend more and put more money into the economy? Instead of helping these big financial institutions that played a role in creating this mess?

PALIN: That’s why I say, I like ever American I’m speaking with were ill about this position that we have been put in where it is the tax payers looking to bailout.

But ultimately, what the bailout does is help those who are concerned about the health care reform that is needed to help shore up the economy– Helping the — Oh, it’s got to be about job creation too. Shoring up our economy and putting it back on the right track. So health care reform and reducing taxes and reining in spending has got to accompany tax reductions and tax relief for Americas.

저 발언 내용을 그대로 방송해 주더군요. 구제금융이 의료 개혁을 염려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더군다나 저 위에 발언 중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한 부분.. 그러니까 일자리 창출에 대한 것이기도 하죠.”라는 부분은 페일린이 이제까지 겨우 3번 한 인터뷰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외우고 있는 티가 나도록 한 화면에 두 개의 인터뷰 장면에서 같은 발언을 하는 걸 그대로 동시 재생을 해 주더군요.

사실 저렇게 엉뚱한 소리하며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페일린을 위해 공화당의 쟁쟁한 브레인들이 달라 붙어 거의 밀봉교육(?) 수준의 집중학습을 시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저런 소리가 나오는 거죠. 정치인에게 살아온 인생이란 주변에서 누가 어떻게 지식을 두뇌에 펌프질 해 준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이 아니랍니다.

쿠릭은 CBS 더 얼리 쇼 (The Early Show)에 나와서는 페일린과 인터뷰한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쿠릭: 그녀(페일린)는 질문을 받을 때는 언제나 바로 대답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때때로 자신이 말하던 원점으로 돌아 오고는 했죠. 어제 그녀를 인터뷰한 것은 제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COURIC: She’s not always responsive when she’s asked question and sometimes does slip back to her talking points. So it was a really interesting experience for me to interview her yesterday.

하도 우리나라에서 쓰레기 같은 언론인들의 험한 표현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저런 표현, 그러니까 그녀를 인터뷰한 것은 제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는 표현이 얼마나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발언인지 감이 안 오실 것 같은데.

더욱 더 민망한 점은 더 얼리 쇼에서 페일린이 쿠릭의 구제 금융 질문을 받고 당황하며 무릎 위에 놓인 수첩를 힐끔힐끔 보며 발언을 하고, 그러다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것이기도 하죠라는 문구를 발견하고는 “Oh”라는 감탄사와 함께 앵무새 발언을 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 겁니다. 아래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직접 보시죠.

저 수첩을 뒤적이며 (물론 수첩이 화면에 잡히지는 않습니다만, 저 동영상을 보시면 페일린이 수첩을 힐끔힐끔 보는 것이 느껴지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이 떠 오르더군요. 그러고 보니 헤어스타일도 비슷한 것도 같고. 아무튼

제가 정말 장담하는데, 이번 미국 대선에서 맥케인은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에 대해 앞으로 투표일까지 밤마다 베개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할 겁니다.

제가 페일린이 저렇게 자신이 하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떠벌리는 모습을 보고 김영삼 대통령의 환생을 보는 것 같다는 말씀이나 수첩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거물급 여성 정치인이 떠 오른다는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솔직이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한 분 더 있습니다.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녹색성장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하고라도 주택 공급가를 낮추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며, 모르긴 몰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이란 말의 참 뜻을 모르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더군요. 모르죠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이란 원자력 발전을 의미한다면 일관된 주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원자력 = 녹색 ?

원래 방사능 물질의 심볼은 노란색인데, 그렇다면 황색성장을 강조하셨어야 되는 게 아니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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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 구제금융 문제로 미국이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다들 난리지만, 적어도 저렇게 자격 미달의 정치인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언론에 버티고 서 있는 한, 아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가 붕괴되려면 더 시간이 흘러야 할 거라는 점은 알겠더군요.

물론 저런 장치가 늘 작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9·11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핑계로 부시가 8년이나 집권하도록 방조한 미국의 언론 환경을 지적하자면 이런 답변을 드리고 싶네요. 미국인들은 저런 자격 미달의 대통령을 뽑은 대가로 4천 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목숨을 이미 이라크 사막에 묻었고, 7천억 달러라는 막대한 구제 금융을 월스트리트에 국민들의 세금으로 처 발라야 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거의 동일한 액수의 전쟁 비용을 이미(!) 지불했다고 말입니다.

자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 뭘 지불해야 할까요? 김영삼 대통령으론 IMF를 지불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뭐가 준비되어 있으려는지. 그리고 수첩으로 유명한 한 여성 정치 지도자는 무얼 준비 중이신지.

후기: 처음 페일린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을 받았을 때, 저는 그녀가 이번 대선에서 떨어져도 워싱턴 중앙 정계로 진출할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죠. 특히나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의 감동까지 감안하면, 알라스카라는 변방의 정치인에게 정말이지 커다란 기회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정치인의 바닥을 보고 말았다는 자괴감과 함께 알라스카에서 조차 골 빈 앵무새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퇴출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비슷한 급의 두뇌 용량을 자랑하는 수첩 공주는 아직도 여당 내에서 어마어마한 정치적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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