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나 물처럼 주변에 있을 때 가치를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 갑자기 귀중하게 여김을 받을 때는, 그런 흔해빠진 것(?)이 사라져 버릴 때죠. 즉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나 갈증을 느끼고 나서야 우리는 생명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일단 이번 민항기 우회를 통해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남북평화가 망가질 때, 우리와 북한이 각각 입을 손해를 따져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북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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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하는 항로 현황. [자료제공-국토해양부] (
통일뉴스인용)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북한 영공이 아니라 북한이 관장하고 있는 비행정보구역이라는 놈입니다. 위 그림에 보시다시피 B467이란 구간을 우리 국적 항공사들이 요긴하게 써 먹었죠.


뭐.. 우리한테만 좋았던 건 아니고요. 북한도 우리 국적항공사들에게 저 구간 통과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매년 30억원 이상을 챙겼다고 합니다. (출처) 우리 국적항공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항공사까지 치면 매년 50-60억원 정도 수입이 생겼으니 빡빡한 북한 사정에 쏠쏠한 수입원이었을 겁니다 (출처).


이제 북한은 자신들의 조처로 최소한 우리 국적항공사가 지불하던 매년 30억원 이상의 통과료 수입은 날라가 버린 셈이 되었죠.


그럼…우리는 B467 구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손해를 볼 일이 없는가? 이런 질문이 당장 생기죠.


매번 비행기 한대 통과할 때마다 북한에 이용료로 135만원 정도를 지불했는데 저길 통과 못하고 일본 비행정보구역으로 돌아가면 300-400만원 정도가 더 든다고 하네요(출처).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예전에 북한정부의 수입이던 통과료는 이제 일본정부의 수입으로 바뀌고 말이죠.


대략 우리 국적항공사들은 매년 70-90억원 정도의 추가 지출과 함께 비행시간 증가에 따른 고객불만을 떠 안아야 되고, 반대로 일본 정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과 이에 반발한 북한 정부의 조처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매년 30억원 이상을 챙기는 횡재를 하게 된거죠.


아무튼 우리가 얼마를 손해를 보던, 그리고 일본 정부가 얼마나 추가 수입이 생기던 말던… 나는 무조건 북한에 한푼이라도 자금 유입이 되는 건 참을 수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께는 좋은 뉴스일지 몰라도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이게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식입니다.

이제 조금 시야를 넓혀보죠.


지난 10년동안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지다시피했죠. 이게 뭐냐하면 당장 20, 30년전만 해도 한반도에는 늘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상존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외자를 도입할 때, 돈을 빌려주는 외국은행 입장에서 그런 전쟁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자율을 조금 더 높여 받았던 걸 말하는 겁니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 노력 덕분에 최소한 우발적 충돌이라면 몰라도 의도적인 군사도발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외자 도입시 최소한 군사적 긴장감에 따른 불이익을 볼 일은 예전보다는 없어졌다는 거죠.


이제 다들 아시겠지만, 국제 금융시장 사정이 썩 좋지를 못합니다. 최근 외신들의 한국 때리기도 그렇고 작년 초는 물론이고 작년 말과 비교해도 외국에서 돈을 빌릴 때 지불하는 이자율이 장난이 아니게 높아졌죠. 쉽게 얘기하자면 외국 은행 입장에서 꼬투리 잡을만한 것이 있으면 최대한 꼬투리를 잡아 비싼 이자율을 때릴 분위기란 말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독한 마음 먹고 서해안이든 어디든 국제 언론의 시선을 끌만한 군사도발을 벌일 경우 지금 우리가 물고 있는 이자율보다 훨씬 더 높은 이자율을 물어야 될 조건이 완전히 무르익었다는 거죠. 일단 아래 도표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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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로이터통신 2월 27일 기사>


이게 작년초부터 올해 2월말까지의 우리나라 외자도입 조건의 변화를 담은 도표입니다. 위 그림중에 주황색 실선을 보세요. 이건 우리나라가 1만 달러를 외국은행에서 빌릴 때, 이를 보증받기 위해 매년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나타냅니다. 작년 초에 1만달러 빌릴 때, 겨우 46달러만 내면 되던 것이 이제는 456달러를 내야하죠. (이 표현은 CDS의 변동추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채권의 신용도가 낮아지고 있고 따라서 우리정부의 외자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인데... 전문가들 눈에는 좀 이상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마치 우리정부가 외자도입을 할 때, 1만불 당 저만큼씩 돈을 지불하는 것 처럼 해석하기 쉽게 쓰여졌으니. 쩝....나머지 설명은 walknow님의 아래 댓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만 거의 2000억 달러입니다(출처).


불과 1년전의 상황과 현재 상황의 차이가 무엇인지 감이 오시는지요…. 바뀐 거라고는 대통령 하나 밖에 없는데 외자도입시 지출되는 경비가 10배가 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죠. 당연히 국제 금융위기에 따른 외자도입 여건의 악화는 사실이니까요.)


거기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계속되어서 만약 서해안에서 대규모 해상 충돌이 벌어지거나 각종 미사일 발사를 통한 무력시위가 벌어지면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외자의 이자가 얼마나 더 높아 질지 생각 좀 해 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비싸게 도입되는 외자로 주머니가 두둑해 지는 사람들은 또 누구겠냐고요? 그리고 추가로 나가는 이자와 도입 비용은 결국 여러분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것도 좀 챙겨서 생각하시고요.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퍼주기니 뭐니 말이 많았고 때로는 북한의 눈치없는 도발로 긴장이 고조된 적도 있기는 하지만, 국내외의 모든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하나는 남북간에 일정 수준 이상의 평화가 정착이 되었다는 걸 겁니다. 이런 평화는 여러분이 느끼시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주고 있던 거죠.


자그마치 10년이나 지속된 남북간의 평화가 우리 국민들에게 준 건 아쉽게도 우리국민들로 하여금 이런 평화의 가치를 점차로 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겠죠. 덕분에 남북간의 긴장 고조도 자신들의 정권안보에 사용하는데 전혀 꺼리낌이 없는 정부의 등장에 거의 과반수의 국민들이 손을 들어주기도 했고요. 북한에 나가는 돈만 아까와 했지, 그런 평화를 통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챙기고 있던, 북한에 나간 금액의 몇배나 많은 유익의 가치는 소홀히 했고 말이죠.

오늘은 남북평화의 시장 가격에 대해서 조금은 실제적인 접근을 해 보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실용을 강조하는 정부이니 제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당장 4월 재보선 때, 이명박 정부 좀 말려 주세요….좀 세상 돌아가는 걸 이해하는 정치 집단에게 표를 주시란 말입니다. 당장 여러분의 호주머니와 직결된 일이에요.


추가: 이 글을 미국 시간으로 3/6 오후에 올린 글인데.. 이미 3/6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외에도 Air Canada와 Singapore Airlines가 북한 비행정보구역을 우회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국적 항공사인 델타와 유나이티드 에어의 경우 처음부터 북한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하는 항로가 없었다고 하네요. (출처: AP 통신: Jean H. Lee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