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국방정책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
2007년 7월 4일 서프에 올린 글
다들 대선 이야기와 통합 이야기, 이명박씨 재산 이야기에 집중하고 계신데, 전 조금 다른 주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노통의 지난 시간들을 차근히 정리하기 시작해 볼까 하고요. 오늘은 노통의 국방 정책 중에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1) 미국의 포로 및 전투 중 실종자 확인 통합 사령부
미국에 대한 감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죠. 전 좀 복잡합니다.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이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사안에 따라 갈피를 잡아 나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친미나 반미를 떠나서 “역시 미국이구나!”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점은 이런 겁니다. 즉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적성국인 북한에 들어가 6.25때 전사한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해서 본국으로 송환하고, 또 신원을 확인해서 국립묘지에 안장해 주는 … 뭐랄까… 역시 국제적인 패권국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느낌인 겁니다.
이런 노력은 북한에 대해서만 하는 건 아니고 ‘포로 및 전투 중 실종자 확인 통합 사령부’ (JPAC: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http://www.jpac.pacom.mil/)를 통해서 이차세계대전이래로 지금까지의 모든 전장에서 전사자들의 유해 수색 및 발굴 노력을 끝없이 펼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라오스에 6개 팀이 파견되었고 올해에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 추가로 유해 송환 팀이 파견 될 예정입니다.
수습한 유해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서 아예 하와이에 ‘중앙 신원 확인 연구소’ (CIL: Central Identification Laboratory: http://www.jpac.pacom.mil/CIL/CIL_Home.htm)를 차려 놓고 미토콘드리아 DNA 타이핑을 통해 신원 확인을 하고, 신원이 확인이 되면 유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최고로 예의를 갖춰서 장례를 치릅니다.
다시 북한으로 가 보죠.
1953년에 6.25가 끝났을 때, 자그마치 8177명의 미군이 행방불명인 상태였습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네요) 1994년에 생전의 김 주석이 미국이 제안한 북미 전사자 유해 송환팀 구성을 받아들입니다. 결국 1996년 5월에 다음과 같은 합의문에 서명을 하게 되죠.
1996년에 계획된 2차례의 프로젝트 중 첫 번째 프로젝트인 북한 북서부 지역의 탐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9월에 있을 예정이었던 두 번째 유해 송환 프로젝트는 당시 강릉에 좌초된 상어급 잠수함 사건으로 취소가 되었습니다.
1) 미국은 북한이 지난 기간 보여준 미군 유해 발굴과 반환에 대해서 감사를 표명한다.
2) 이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2백만 불을 지불한다.
3) 1996년 6월에 2차례의 유해 송환 프로젝트 구성을 위한 실무 접촉을 갖는다.
4) 북미간의 관계 회복에 노력한다.
이후 1997년부터 다시 유해 송환 프로젝트가 재개되어서 1997년에 3차례, 1998년 5차례 유해 발굴 및 송환 사업이 진행되었죠.
뭐.. 미국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전사자 유해 발굴 송환, 그리고 작전 중에 행방불명되거나 포로가 된 자국 군의 신원 확인에 정부차원에서 열심을 내었던 건 아니고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서 실종자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부지런히 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가한 결과 실제 입법이 된 점은 고려를 하셔야 할 겁니다.
아무튼 시작이야 어찌되었던, 미국이 보여주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들에 대한 경의와 노력에 대해서는 높이 사야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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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POW/MIA 기. ‘조국은 너를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가 강렬하죠?)
자…… 그럼 이제 우리나라를 좀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소개부터 좀 드리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친가는 고향이 평양입니다. 제 부친을 포함해서 친가 쪽 식구들은 해방 이후 모두 월남을 한 월남 가족이죠. 당연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고모부와 제 부친 모두 해병 장교 출신이십니다. 뭐 더 이상 자세히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시리라 믿고 사족을 달지 않겠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이러니 DJ와 현 정권에 대한 평가도 빨갱이 정권이라는 이야기가 늘 자연스럽게 나온답니다. 전 물론 이런 평가에 대해서 동감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DJ와 노통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경제 상식과 국제 상식만 있다고 한다면, 이 두 정권의 경제 정책을 좌파적 이라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망신스러운 개그인지는 따로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고요.
제가 집안 어른들께 왜 이들 양대 정권을 빨갱이 정권이라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 여쭤보면, 친북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하십니다.
뭐…… YS 이전의 정부들과는 대북정책이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햇볕 정책 (대북 유화 정책이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을 과연 친북적인 정책이라고 볼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전문가들의 생각은 좀 다를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사실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의 당사자인 두 정권의 성격을 오늘 규정하려는 것이 제 글의 주된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보수적인 분들이 주장하시는 이들 빨갱이(?) 정권 (DJ, 노통)이 추진한 정책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해서요.
(2)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단
우선 배경 설명부터……
6.25 기간 중 행방불명되어서 실종 처리된 국군의 수가 13만5천이 넘습니다.
종전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YS에 이르는 소위 반공정신이 투철하고 대북 강경 노선을 추구해 온, 보수 정권 집권 기간 중에 이들 실종 처리된 국군의 유해 발굴 및 신원 확인에 대해서, 정부 차원의 노력이 경주된 사업이 추진된 기억이 없습니다.
뭐.. 먹고 살기가 힘든 시기였고,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심각했던 시기는 그렇다고 칩시다.
명색이 보수 정권이라면 시바스리갈 이나, 국풍 잔치, 동구권 경협 자금에 쓸 돈이 있었으면, 그 돈 중에 일부라도 좀 아껴서 조국 수호를 위해 산화한 장병들의 유해를 수습하는 일에 조금은 더 관심을 쏟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좀 더 부합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6.25 이후 만 50년 만인 2000년 6월에 ‘6.25 전쟁 50 주년 기념 사업단’이 결성되고 산하 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단’이 조직됩니다. 2003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 계획이 짜이죠. 보수진영으로부터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DJ 정권에서 말이죠. 이 3년 동안 전사자 유해 781구와 유품 2만6천여 점이 수습됩니다.
그런데 2003년 6월 보수진영에서 2번째 빨갱이 정권으로 찍힌 노통 정부가 이 사업을 영구 사업으로 전환합니다. 육군 본부 유해발굴 담당부서가 정규 편제로 전환되죠. 물론 사업 예산도 넉넉지 못하고 인력도 많이 부족하지만, 노통이 집권한 이후 1천여 구 이상의 전사자 유해가 추가로 발굴이 되고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DJ와 노통, 양대 정권을 보는 제 생각을 좀 나눠 볼까 합니다.
말이 좋아 정권이지, 국가의 전반적인 면을 다 책임지는 책임자 집단을 평가할 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에도 노통의 제주 발언으로 보수적인 집단에서도 노통의 ‘국가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고 무장 없이 국가를 지킬 수 없다’라는 발언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걸 봤습니다만.
경제 외교 정책, 그 중에서도 대북 정책에 있어서 우리 정부 손에 쥐어 질 수 있는 카드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당장 한나라당의 대표 대선 주자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DJ와 노통 임기 중에 보여준 대북정책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북 지원을 확 줄여버리고 대북 강경 정책으로 돌아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답은 벌써 나와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 꼴 나는 거죠. 지금 동북아에서 소위 6자 회담의 참가국 중에서 가장 말발이 안서고 왕따 당하는 주역이 누군지, 그리고 왕따 신세를 자초한 일본의 대북 강경 노선이 일본의 국익에 도대체 무슨 조그마한 보탬이나 됐는지 한번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마무리 발언하죠.
적어도 6.25 전사자 유해 발굴에 관심을 보인 최초의 정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DJ 정권은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빨갱이 정권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을 영구 사업으로 전환해서 지난 4년간 묵묵히 사업을 계속해온 노통 역시 보수주의자들에게 떳떳하다고 감히 말할 건덕지는 있다고 봅니다.
자신들이 권좌에 앉아 있고, 장군 직을 달고 호령하던 시절, 6.25 전사자들의 유해 발굴에 코빼기조차 들이밀지 않던 양반들이, 이제 와서 장롱 속의 군복을 꺼내 입고 나와서 DJ와 노통에게 빨갱이 친북 정권이라고 손가락질 하시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못해 과연 우리나라에서 보수주의자는 어떤 존재일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대북 강경 정책을 가장 소리쳐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누굽니까? 김용갑 의원이죠? 한번 손가락이 있고, 구글 같은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분은 이 양반의 아들들이 군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 했는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부분을 수정합니다. 김용갑의원에게 3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간염으로 장기입원 치료, 두째 아들은 시력 미달로 ROCT의 꿈을 접고 보충역, 세째 아들은 기흉으로 대수술 3차례 받은 끝에 면제입니다. 제가 자세한 사항을 알아 보지 않고 김용갑의원과 그 자제분들께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제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쓴 부분은 노란색으로 표시하여 남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지적해주신 서프앙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회창씨의 2차례에 거친 낙마로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한때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신한국당, 민정당 국회의원들은 본인과 자녀들의 군대 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들 보다 몇 배나 높았습니다.
솔선수범하지 않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자기 자식들은 전부 군대를 빼면서 국회에 나와서는 대북 강경 정책을 소리쳐 외치면 그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게 과연 진정한 보수이기는 한 건가요?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죠.
하지만 맘에 묻어 놓았던 마지막 한마디 더. 이건 현 정권에 쓴 소리입니다.
작년 10월 중국 선양에서 한국 총영사관이 주선한 민박집에 잠시 체재해 있던 중에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북한에 강제 송환된 국군 포로 출신의 탈북자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저 역시 외국에 나와 살면서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태도에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중국에 있는 한국 영사관의 경우 더욱 더 문제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아니고 조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전투를 치러내고, 북한에 포로로 남아 한평생을 고생하신 분들이 겨우 북한을 탈출했는데, 조국이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하고 북한으로 다시 강제 송환 당한 것은 입이 열 개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제가 이 글 중간에 그림으로 올려놓은 미국의 POW/MIA 깃발을 다시 보시죠.
‘YOU ARE NOT FORGOTTEN’ ― 조국은 너를 잊지 않고 있다.
살아 있건 죽었던, 적어도 조국을 위해 총을 잡았던 이들을 최선을 다해서 경의를 표하고 지켜주지 못하는 곳에서 후세들로부터 진정한 애국심이 싹트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