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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0일 서프에 올린 글
세상 돌아가는 게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런 꼴을 하고도 이렇게 기세가 등등할 수가 있다니. 마치 양파를 까듯 한 꺼풀이 벗겨질 때마다 진풍경이 벌어지니 그거 참…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치를 전사(戰史) 속의 이야기와 끼워 맞추기 좋아하는 밀리 매니아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편안하게 그림을 듬뿍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고민하지 마시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서론
이차세계대전,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독소전에 관심을 갖다 보면, 처음에는 독일군의 기갑부대와 그들의 현란한 기동 전술, 그리고 혼자서 수백 대의 소련군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독일 공군 에이스들이나, 아니면 멋있는 독일군복과 기장, 스탈린그라드의 격전 같은 것으로부터 흥미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곧 독소전이라는 것이 독일군의 무장SS 사단들이나 소련군의 근위사단 같은 정예 군인들의 마당이 아닌, 이들 두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모질게도 고단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민중들의 딱한 모습이 두드러진 전쟁이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답니다.
전쟁터에서 보이는 모습들의 이면을 양파 껍질 까듯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래 한 독일 병사의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시죠.
전쟁터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금발의 독일 병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MB가 각종 비리(?)가 폭로되기 전에 갖고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하시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뒤에서 뭔가 연기가 올라오죠?
(1) 첫 번째 양파 껍질
앵글을 조금만 뒤로 빼 보겠습니다.
불타고 있는 러시아 촌락 마을이 배경에 보이시는지요? 저 연기 속의 불기둥 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이런 식으로 독일군 손에 잿더미로 변한 가옥이 6백만 채나 되고 이재민이 된 소련 민중의 수가 2500만 명이나 됩니다.
환하게 웃는 독일 병사의 모습 뒤에는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불길 속에서 목숨을 보전하려고 애쓰는 소련 민중의 애처로운 발버둥이 숨겨져 있던 거죠.
한 가지 사물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될수록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경우와 반대로 속이 울렁거리게 역겨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각각 있답니다. 독소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파시스트 나찌 독일군의 잔학상에 치를 떨게 되죠. 아마 대부분의 독소전 밀리 매니아들이 겪는 경험일 겁니다.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와 청계천이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시정 업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화려하게 보이기만 하던 MB의 등 뒤에 마치 독소전 기간 동안의 독일군의 잔혹 행위처럼 각종 비리와 국민을 기만하는 부동산 비리가 도처에 산재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주류 언론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각종 분석자료를 이곳 서프에서는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습니다. 곰배령님께서 자세히 풀어 주시는 세금관련 지식 덕분에 MB와 그 형제와 처남이 전국적으로 싸질러 놓은 부동산 투기의 숨겨진 진실을 양파 껍질 까듯이 하나하나 분석해 볼 수 있는 점도 서프가 아니라면 결코 누려보지 못할 호사에 속하죠.
(2) 두 번째 양파 껍질
이런 독일군의 만행은 전쟁 초반 지긋지긋한 스탈린의 탄압에 진저리를 치던 우크라이나나 백러시아 민중들이 보였던 독일군이 해방군이라는 착각을 원천적으로 지워버리는데 큰 일조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인종주의적 차별정책과 각종 자원의 수탈을 통한 소련 민중들에 대한 탄압은 세계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엽기적인 상황을 연출하죠.
한번 보실래요? 아래 첫 번째 그림이 ‘독일인 전용 (For German Only)’이라는 표시로서 당시 독일군 점령지에서는 각종 상점과 식당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시였답니다. 예전 미국 남부의 흑인차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그밖에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에 버금가는 대규모 노동자 강제 송출도 벌어지죠.
주로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거의 4백만 명의 소련 민중들이 ‘동방 노동자 (Ostarbeiter)’라는 이름으로 독일로 끌려가 노예 노동을 강요받죠. 일제 강점기 강제 송출에 버금가는 각종 농산물의 징발에 저항하는 농부들은 아래 사진에서처럼 곤장(?)으로 치도곤을 당하고 이런 모습에 열 받아 독일군 시설물에 방화를 하거나 하는 소련 민중들은 예외 없이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해 집니다.
이런 독일군의 탄압 덕분(?)에 독일군 점령지에서는 엄청난 수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총을 듭니다. 이른바 그 유명한 파르티잔 (빨찌산) 이죠. 남정네들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나 어린 꼬마, 젊은 처자들까지 모두 손에 총을 들고 대독 파르티잔 전사로 변신합니다.
백러시아 한 곳에서만도 1943년 2월에 고작 6만 5천 명의 파르티잔이 있었는데 그 해 말에 무장 파르티잔의 수가 36만 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세가 빨랐습니다.
마치 서프에서 택시 기사 분이나 가정주부들 그리고 각 지역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학생들이 모여 각종 자료를 찾아 자발적으로 반민중적 성향의 한나라당을 비판할 자료와 글로 싸우는 모습이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을 겁니다.
이들 파르티잔 용사들은 독일군 점령지에서 주로 철도 파괴 활동을 벌이는데 이들 파르티잔을 진압하기 위해 독일군은 후방에 24개 정규 사단을 배치해야 했죠. 1개 사단의 전방 배치가 아쉬운 마당에 독일군으로서는 정말이지 뼈아픈 전력 손실이었습니다.
아마 서프를 중심으로 한 양심적인 네티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나마 참여정부의 개혁 정책도 이 정도의 탄력을 받기 힘들었을 테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의 준동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성스러웠을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도 머네요. 독소전 당시의 승리를 만끽한 소련 민중들의 희열을 우리 서프앙들도 같이 맛보고 싶은데….
여기까지만 언급하고 글을 맺는다면 독소전 당시의 소련 민중들의 실제 모습을 고스란히 담지 못한 절름발이 글이 되고 말 겁니다. 마지막으로 껍질 하나 더 까죠.
(3) 세 번째 양파 껍질
독소전이 개전 되기 전 우크라이나나 백러시아의 경우 민중들의 분노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답니다. 그 잘난 사회주의 조국 건설의 여파로 ‘집단 농장’이 무리하게 추진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서만 600만 명이 굶어 죽고 전국적으로 1000만 명이 사망하게 되죠. 당시 소련 인구가 1억 9천만 명 정도였습니다. 90년대 말의 북한의 대기근에 따른 엄청난 기아도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각종 정치적 탄압에 의한 소수 민족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더군다나 독소전 발발 직전에 독일과 짝짜꿍이 되어서 주변의 약소국들을 침략하고 강제로 합병하는 조처들은 사회주의 모국이라 일컬어지는 소련에게 최소한 도덕적인 면에서 파시스트 국가들이나 일반 제국주의 국가들과 하등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만듭니다.
똥 싼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요? 3일 만에 서울을 내어주고 부산으로 도망간 이승만이 서울을 수복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부역자들을 처형하는 일이었죠. 일본군의 진격에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한달음에 도망가 버린 선조 역시 한양을 되찾고 제일 먼저 벌인 일이 부역자들의 처벌이었습니다.
대개 자신이 지켜 주어야 할 대상을 버리고 도망간 지도자일수록 자신의 비겁했던 행위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점령지에서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남은 이들에게, 부역이란 죄명으로 가혹한 처벌을 일삼죠.
위에 언급한 독일로 노예 노동을 위해 끌려간 400만 명이나 되는 ‘동방 노동자’들은 전후 소련에 송환되어 대부분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억울하게 독일로 끌려가 노예 노동에 혹사당한 것도 서러운데, 귀환해서는 스탈린에 의해 서방의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가혹한 탄압을 받습니다.
지금 한나라당과 그 당의 대선 주자를 지지하는 분들께 한번 여쭈어 보고 싶네요.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면 여러분들의 모습이 어디에 해당 될 것 같은가요? 한나라당의 정책과 그 당 출신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우할 것 같습니까?
(4) 결론
독소전 당시의 민중은 스스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개전 초 스탈린은 며칠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패닉 상태에 빠져 초기 독일군의 침공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죠. 이후 키에프 방어전에 전략적 철수를 주장하는 장군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후퇴 불가를 고집하다 만슈타인의 중부군에 의해 대규모 포위를 당해 막대한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지도자로서 개망신 급의 수모를 당합니다. 전후에는 자신의 망신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자국민의 탄압에 앞장을 서고요.
하지만, 그나마 소련의 민중들은 누가 적인지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죠. 누가 자신들의 가족들을 독일로 강제 징용을 해 가는지, 누가 자신들이 땀 흘려 일궈 놓은 농산물을 강탈해 가는지, 누가 자신들을 차별하고 모욕하는지를. 그리고 목숨을 바쳐 이들과 싸우기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현재 우리나라의 상태는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월급 생활자의 절반 정도가 연말에 정산을 하면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는 나라에서 다수의 국민이 참여정부가 과도한 세금으로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때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강남의 자제들에게 분명하게 유리한 입시 정책을 대다수의 사립대학과 서울대학에서 추진을 하고,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애를 쓰는데 국민으로부터 한마디 수고했다는 소리를 듣기는커녕 좌파 정부라는 소리만 듣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이 지금껏 누가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해 왔고 또 앞으로 추진할지를 눈은 뜨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려줘야 할 언론 종사자들은 오히려 국민에게 엉터리 정보만 전달하고 있고요. 적이 누군지 깨달아야 제대로 싸우죠.
쓰레기 급의 대선 후보들이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제정신 갖고 살게 해 주는 곳이 이곳 서프입니다. 대선과 그 이후에도 꾸준히 대한민국의 양심적인 네티즌들의 근거지가 되어야 할 곳이죠.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 한번 했습니다. 이제 다시 털고 일어나 가열차게 싸워봐야죠. 다들 힘냅시다!
사족: 예전에 열린우리당과 노통의 관계를 독일군에 빗대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를 보고 파시스트 나찌를 교묘하게 노통과 연관시켰다고 열 내시는 분이 있더군요. 제가 만약 이솝 우화에 빗대어 글을 썼다면 노통을 짐승이라고 여긴다고 화를 내실 건지요. 이번 글도 공산주의 국가의 파르티잔을 예로 들었다고 해서 빨갱이라고 해석하시는 분께 미리 경고합니다. 그렇게 좁게 보고 살지 맙시다.
한나라당, MB 그리고 양파
2007년 7월 10일 서프에 올린 글
세상 돌아가는 게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런 꼴을 하고도 이렇게 기세가 등등할 수가 있다니. 마치 양파를 까듯 한 꺼풀이 벗겨질 때마다 진풍경이 벌어지니 그거 참…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치를 전사(戰史) 속의 이야기와 끼워 맞추기 좋아하는 밀리 매니아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편안하게 그림을 듬뿍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고민하지 마시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서론
이차세계대전,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독소전에 관심을 갖다 보면, 처음에는 독일군의 기갑부대와 그들의 현란한 기동 전술, 그리고 혼자서 수백 대의 소련군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독일 공군 에이스들이나, 아니면 멋있는 독일군복과 기장, 스탈린그라드의 격전 같은 것으로부터 흥미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곧 독소전이라는 것이 독일군의 무장SS 사단들이나 소련군의 근위사단 같은 정예 군인들의 마당이 아닌, 이들 두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모질게도 고단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민중들의 딱한 모습이 두드러진 전쟁이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답니다.
전쟁터에서 보이는 모습들의 이면을 양파 껍질 까듯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래 한 독일 병사의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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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금발의 독일 병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MB가 각종 비리(?)가 폭로되기 전에 갖고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하시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뒤에서 뭔가 연기가 올라오죠?
(1) 첫 번째 양파 껍질
앵글을 조금만 뒤로 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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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고 있는 러시아 촌락 마을이 배경에 보이시는지요? 저 연기 속의 불기둥 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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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독일군 손에 잿더미로 변한 가옥이 6백만 채나 되고 이재민이 된 소련 민중의 수가 2500만 명이나 됩니다.
환하게 웃는 독일 병사의 모습 뒤에는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불길 속에서 목숨을 보전하려고 애쓰는 소련 민중의 애처로운 발버둥이 숨겨져 있던 거죠.
한 가지 사물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될수록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경우와 반대로 속이 울렁거리게 역겨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각각 있답니다. 독소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파시스트 나찌 독일군의 잔학상에 치를 떨게 되죠. 아마 대부분의 독소전 밀리 매니아들이 겪는 경험일 겁니다.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와 청계천이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시정 업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화려하게 보이기만 하던 MB의 등 뒤에 마치 독소전 기간 동안의 독일군의 잔혹 행위처럼 각종 비리와 국민을 기만하는 부동산 비리가 도처에 산재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주류 언론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각종 분석자료를 이곳 서프에서는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습니다. 곰배령님께서 자세히 풀어 주시는 세금관련 지식 덕분에 MB와 그 형제와 처남이 전국적으로 싸질러 놓은 부동산 투기의 숨겨진 진실을 양파 껍질 까듯이 하나하나 분석해 볼 수 있는 점도 서프가 아니라면 결코 누려보지 못할 호사에 속하죠.
(2) 두 번째 양파 껍질
이런 독일군의 만행은 전쟁 초반 지긋지긋한 스탈린의 탄압에 진저리를 치던 우크라이나나 백러시아 민중들이 보였던 독일군이 해방군이라는 착각을 원천적으로 지워버리는데 큰 일조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인종주의적 차별정책과 각종 자원의 수탈을 통한 소련 민중들에 대한 탄압은 세계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엽기적인 상황을 연출하죠.
한번 보실래요? 아래 첫 번째 그림이 ‘독일인 전용 (For German Only)’이라는 표시로서 당시 독일군 점령지에서는 각종 상점과 식당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시였답니다. 예전 미국 남부의 흑인차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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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에 버금가는 대규모 노동자 강제 송출도 벌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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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거의 4백만 명의 소련 민중들이 ‘동방 노동자 (Ostarbeiter)’라는 이름으로 독일로 끌려가 노예 노동을 강요받죠. 일제 강점기 강제 송출에 버금가는 각종 농산물의 징발에 저항하는 농부들은 아래 사진에서처럼 곤장(?)으로 치도곤을 당하고 이런 모습에 열 받아 독일군 시설물에 방화를 하거나 하는 소련 민중들은 예외 없이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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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독일군의 탄압 덕분(?)에 독일군 점령지에서는 엄청난 수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총을 듭니다. 이른바 그 유명한 파르티잔 (빨찌산) 이죠. 남정네들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나 어린 꼬마, 젊은 처자들까지 모두 손에 총을 들고 대독 파르티잔 전사로 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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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러시아 한 곳에서만도 1943년 2월에 고작 6만 5천 명의 파르티잔이 있었는데 그 해 말에 무장 파르티잔의 수가 36만 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세가 빨랐습니다.
마치 서프에서 택시 기사 분이나 가정주부들 그리고 각 지역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학생들이 모여 각종 자료를 찾아 자발적으로 반민중적 성향의 한나라당을 비판할 자료와 글로 싸우는 모습이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을 겁니다.
이들 파르티잔 용사들은 독일군 점령지에서 주로 철도 파괴 활동을 벌이는데 이들 파르티잔을 진압하기 위해 독일군은 후방에 24개 정규 사단을 배치해야 했죠. 1개 사단의 전방 배치가 아쉬운 마당에 독일군으로서는 정말이지 뼈아픈 전력 손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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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서프를 중심으로 한 양심적인 네티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나마 참여정부의 개혁 정책도 이 정도의 탄력을 받기 힘들었을 테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의 준동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성스러웠을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도 머네요. 독소전 당시의 승리를 만끽한 소련 민중들의 희열을 우리 서프앙들도 같이 맛보고 싶은데….
여기까지만 언급하고 글을 맺는다면 독소전 당시의 소련 민중들의 실제 모습을 고스란히 담지 못한 절름발이 글이 되고 말 겁니다. 마지막으로 껍질 하나 더 까죠.
(3) 세 번째 양파 껍질
독소전이 개전 되기 전 우크라이나나 백러시아의 경우 민중들의 분노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답니다. 그 잘난 사회주의 조국 건설의 여파로 ‘집단 농장’이 무리하게 추진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서만 600만 명이 굶어 죽고 전국적으로 1000만 명이 사망하게 되죠. 당시 소련 인구가 1억 9천만 명 정도였습니다. 90년대 말의 북한의 대기근에 따른 엄청난 기아도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각종 정치적 탄압에 의한 소수 민족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더군다나 독소전 발발 직전에 독일과 짝짜꿍이 되어서 주변의 약소국들을 침략하고 강제로 합병하는 조처들은 사회주의 모국이라 일컬어지는 소련에게 최소한 도덕적인 면에서 파시스트 국가들이나 일반 제국주의 국가들과 하등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만듭니다.
똥 싼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요? 3일 만에 서울을 내어주고 부산으로 도망간 이승만이 서울을 수복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부역자들을 처형하는 일이었죠. 일본군의 진격에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한달음에 도망가 버린 선조 역시 한양을 되찾고 제일 먼저 벌인 일이 부역자들의 처벌이었습니다.
대개 자신이 지켜 주어야 할 대상을 버리고 도망간 지도자일수록 자신의 비겁했던 행위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점령지에서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남은 이들에게, 부역이란 죄명으로 가혹한 처벌을 일삼죠.
위에 언급한 독일로 노예 노동을 위해 끌려간 400만 명이나 되는 ‘동방 노동자’들은 전후 소련에 송환되어 대부분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억울하게 독일로 끌려가 노예 노동에 혹사당한 것도 서러운데, 귀환해서는 스탈린에 의해 서방의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가혹한 탄압을 받습니다.
지금 한나라당과 그 당의 대선 주자를 지지하는 분들께 한번 여쭈어 보고 싶네요.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면 여러분들의 모습이 어디에 해당 될 것 같은가요? 한나라당의 정책과 그 당 출신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우할 것 같습니까?
(4) 결론
독소전 당시의 민중은 스스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개전 초 스탈린은 며칠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패닉 상태에 빠져 초기 독일군의 침공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죠. 이후 키에프 방어전에 전략적 철수를 주장하는 장군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후퇴 불가를 고집하다 만슈타인의 중부군에 의해 대규모 포위를 당해 막대한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지도자로서 개망신 급의 수모를 당합니다. 전후에는 자신의 망신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자국민의 탄압에 앞장을 서고요.
하지만, 그나마 소련의 민중들은 누가 적인지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죠. 누가 자신들의 가족들을 독일로 강제 징용을 해 가는지, 누가 자신들이 땀 흘려 일궈 놓은 농산물을 강탈해 가는지, 누가 자신들을 차별하고 모욕하는지를. 그리고 목숨을 바쳐 이들과 싸우기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현재 우리나라의 상태는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월급 생활자의 절반 정도가 연말에 정산을 하면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는 나라에서 다수의 국민이 참여정부가 과도한 세금으로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때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강남의 자제들에게 분명하게 유리한 입시 정책을 대다수의 사립대학과 서울대학에서 추진을 하고,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애를 쓰는데 국민으로부터 한마디 수고했다는 소리를 듣기는커녕 좌파 정부라는 소리만 듣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이 지금껏 누가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해 왔고 또 앞으로 추진할지를 눈은 뜨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려줘야 할 언론 종사자들은 오히려 국민에게 엉터리 정보만 전달하고 있고요. 적이 누군지 깨달아야 제대로 싸우죠.
쓰레기 급의 대선 후보들이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제정신 갖고 살게 해 주는 곳이 이곳 서프입니다. 대선과 그 이후에도 꾸준히 대한민국의 양심적인 네티즌들의 근거지가 되어야 할 곳이죠.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 한번 했습니다. 이제 다시 털고 일어나 가열차게 싸워봐야죠. 다들 힘냅시다!
사족: 예전에 열린우리당과 노통의 관계를 독일군에 빗대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를 보고 파시스트 나찌를 교묘하게 노통과 연관시켰다고 열 내시는 분이 있더군요. 제가 만약 이솝 우화에 빗대어 글을 썼다면 노통을 짐승이라고 여긴다고 화를 내실 건지요. 이번 글도 공산주의 국가의 파르티잔을 예로 들었다고 해서 빨갱이라고 해석하시는 분께 미리 경고합니다. 그렇게 좁게 보고 살지 맙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