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껍데기와 알맹이
2007년 7월 25일 서프에 올린 글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이사야님께서 글을 써주시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글을 올려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현역 목사님이시자, 열혈 서프앙의 글을 보니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1) 껍데기
그런데 노짱방은 물론이고 국제방에서도 이번 아프간에서 문제가 된 샘물교회의 의료선교는 한국교회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공격적 성향과 제국주의적 가치관의 문제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고…… 선민의식에 빠져있다는 말씀도 간간이 나오고.. ‘개독교’ 라는 표현은 기본이고……
골수 예수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실 관계부터 일단 살펴보죠.
신의 경지를 인간의 언어로 풀어서 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군다나 귤화위지(橘化爲枳) 라고 했던가요? 귤나무가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데, 기독교라는 종교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로 건너가고 나중에 유럽 전역에 퍼지고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각 나라와 민족의 전통 문화, 거기에 더해서 당시 풍미하던 시대 조류가 결부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기독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가 있으신지요?
제 경우는 크리스마스입니다. 전 나이가 35이 넘어서야 예수쟁이가 된 사람입니다. 그 전에는 기독교에 무관심했다기보다는 호전적으로 공격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사람이고요. 이런 저도 아주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가면 뭔가 선물을 준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던 기억이 나네요….
크리스마스에 교회 근처나 아니면 기독교 관련 영화나 드라마가 티비에 나오는 걸 보면, 크리스마스가 마치 예수의 생일인 것처럼 나오죠?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 말구유… 기타 등등….
한번 주변에 예수쟁이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기 예수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는지……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의 관계는요? 개뿔은…. 북유럽 동화에나 나올 엘프와 산타 그리고 루돌프 사슴이 끄는 눈설매가 일 년 내내 눈 한송이 내릴 일이 없는 중동 한구석 팔레스타인에서 기원한 기독교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크리스마스가 왜 기독교에서 명절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날아와 선물을 주고 가는 산타 할아버지를 이해하려면 문화의 이동 경로와 그 과정에서 기존 문화와의 상호 작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동한 기독교가 당시의 세계 최고의 패권 국가인 로마제국의 수도로 전파되어 가죠. 당시 로마에서 12월 25일은 ‘태양신의 생일(Dies Natalis Solis Invicti)’이란 축제날이었죠. 뭐 이런 축제가 꼭 로마에만 있던 건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에서 일손이 한가해지는 겨울에 축제를 벌이고, 그리고 동지를 전후로 짧아졌던 낮이 점차로 길어지는 걸 축하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많은 문화권에서 이 시기를 전후한 축제 기간을 갖죠.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죠.
기독교 하면 또 떠오르는 심볼…
네.. 맞습니다.. 십자가죠.
그런데 쿼바디스 같은 초기 기독교도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한번 보십시오. 어디 눈을 씻고 화면을 들여다봐도 십자가가 교회를 상징하는 심볼로 나오는지.. 오히려 그 당시 교회와 기독교의 상징은 익써스(Ichthus) 라는 물고기 문양이 주류였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예수쟁이들 차 뒤꽁무니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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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익써스조차 오리지날로 따지면 기독교의 출현보다 훨씬 더 앞서지만 그래도 십자가 보다야 양반이죠.
게다가 성경에서는 출애굽기 20장 4절에 아예 다음과 같이 못 박고 있죠.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어떤 형태의 심볼도 만들지 말라 이거죠. 그게 물고기 모양이 되었건 십자가 모양이 되었건 말이죠.
결국 팔레스타인에서 유래한 기독교가 로마를 거쳐 유럽에 널리 퍼지는 과정에서 기존 국가나 민족의 문화가 접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겁니다.
기존 문화권이 향유하던 축제 기간이나 형식 그리고 눈으로 뭔가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가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심리까지 덧붙여져서 말이죠.
하던 김에 좀 더 진도 나가 보죠.
이런 식으로 날짜도 모르는 예수의 생일이 붙박이로 굳어지고, 북유럽 동화에 나올 이야기가 상업적 목적까지 겸해서 대부분의 교회에서 전시가 되고, 더군다나 성경에서 금하는 심볼이 십자가가 되었건 물고기 모양이 되었건 교회에 전면에 등장하는 외에도 기독교가 겪는 수난은 계속됩니다.
이제 시대가 흐르고 흘러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제국주의가 발호하는 시대가 옵니다. 우월한 기술력과 물질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서구 문명에 기독교는 한 번 더 껍데기가 씌워지죠. 이후 1,2차 대전을 겪으며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서구 유럽의 한 지파였던 미국 내의 청교도주의적 기독교 문화가 기존의 기독교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그에 바로 영향을 받게 된 것이 우리나라의 기독교 문화라고 보시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겁니다.
유럽 쪽의 기독교 전통과는 조금 달리 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절제와 절약을 강조하는 미국식 기독교에 우리나라 전통적 샤머니즘이 듬뿍 가미된 형태가 되죠.
예수님도 새벽마다 조용한 곳에 가셔서 새벽기도를 하신 분이니 따로 딴지를 걸 일은 없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새벽기도 전통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어머니들이 새벽에 정안수를 떠 놓고 가장과 자녀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전통의 연장선이라는 걸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유럽쪽 목사님들, 특히나 독일쪽의 경우 맥주를 마시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유난히 음주와 흡연에 말이 많은 건, 아무래도 기독교가 전래되던 시기에 과도한 음주 문화로 피폐해진 한국 농민들에게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성경에 없는 지도를 한 서양 선교사들의 영향이겠죠.
에휴..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럼 이런 식으로 변모된 기독교를 원래 기독교와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 아닌지….
그건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제 눈에는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의 일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신앙관은 최소한 성경의 그것과는 결부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 더…
제가 아직도 캠퍼스에 있던 시절입니다. 84년도였던가요? 전두환 정권이 최소한의 학원자유화를 선언하고 교내에 새로운 학생문화가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때죠.
당시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에서는 총학생회 주최로 교문 입구에 세 개의 정승을 세웠습니다. 민주, 민족, 민중 장승이라고.. 당시 이 장승을 제작한 미대학생은 이 장승의 제작을 끝내고 몸살로 앓아누울 정도로 열정을 들여 제작한 정말 수준 높은 작품이었고, 저 역시 매일 등교 길에 그 장승들을 보며 민주화에 대한 뿌듯한 마음을 갖고는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등교 길에 3개의 장승 중 2개가 밑동이 잘린 채 누워 있더군요. 며칠 후에는 나머지 한 개의 정승마저 누워 버렸습니다. 전기톱과 도끼를 동원하여 이들 장승들을 제거해 버린 주역은 당시 서울대 내의 기독교 학생 단체들이었습니다. 이들 장승을 우상이라고 여기고 과감히(?) 제거해 버린 거죠.
당시 저는 예수쟁이들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반감이나 호감,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고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천주교 쪽의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을 보며 어느 정도 호감은 갖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그런데 그 사건을 보면서 완전히 기독교에 질려 버렸습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그런 외골수의 광적인 기독교도들에게 학을 떼 버렸다는 게 더 맞을 겁니다.
나중에 미국에 박사후연수과정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건, 도대체 어떤 종교기에 저렇게 배타적이고 공격적일까.. 미국에 가면 한번 ‘공부’를 해 보자고 결심을 했고.. 미국에 와서 그 결심을 실천을 하게 되었죠.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일단 성경의 구절 하나를 인용하죠. 신약의 골로새서 4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5.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6. 여러분은 언제나 친절하게 유익한 말을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교회 밖의 사람들이란 표현은 비기독교인들을 뜻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이슬람권 사람들이나 우리나라로 치면 불교도 같은 경우 말이죠. 여기 뭐라고 나오나요? 불상의 목을 잘라 버리고, 남들이 애써 세워 놓은 장승을 전기톱으로 잘라버리라고 나오나요?
친절하게 대하라고 나오죠?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라는 표현은 아무 때나 들이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혜롭게 대하라는 말과 유익한 말로 하라는 뜻은 생각 없이 굴지 말라는 거죠. 상황을 잘 고려하고 내가 한 행동의 결과와 파장을 생각하여 사려 깊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란 말입니다.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와 종교적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최선의 전도가 이루어질 방법을 머리를 써서 찾아보라는 말입니다. 그냥 무식하게 가방 싸 들고 우르르 몰려가서 타문화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이 그들의 속을 긁고 오지 말라는 얘기죠.
예수쟁이들에게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건 성경입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목사도 성경과 다른 얘기를 하면 바로 이단 소리 듣죠.
그런데 저렇게 성경에 명명백백히 생각 좀 하면서 타종교권 사람들을 대하라고 나오는데도 매번 외국에 나가서 타종교권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국내에서도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와 갈등을 빚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개독교라고 기독교를 빈정거리시거나 타박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리죠. 이슬람교도 지금이야 이미지가 테러와 겹치는 이미지이지만 근본적으로 평화의 종교입니다. 기독교 역시 중세 십자군과 유럽 제국주의에 의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배려와 아량을 강조하는 종교랍니다.
지금이야 무식한 전도 기법과 교회 운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기독교의 이미지가 엉망진창이지만, 제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각 병원이나 요양소에서 타인의 시선이 있건 없건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묵묵히 봉사활동에 애쓰시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답니다.
지난번 제 글에 어떤 분께서 댓글로 미국의 한인 기독교 단체들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관심이 없다고 하시지만 평양에 설립중인 평양과기대를 후원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미주 기독교 한인 단체들의 활동은 눈부십니다.
다만 이런 선행들이나 조국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은 매스컴의 눈에는 흥미를 끌지 못하니 주변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이겠죠.
이번 아프간에서 벌어진 납치 사건은 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어린 학생들을 단기 선교 보내는 강심장도 놀랍고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 기존의 들이밀기식 선교와 전도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납치된 사람들 전원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 알맹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2부를 본 글에 첨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왔는데, 막상 험한 댓글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좀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현재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기독교의 수많은 문제점들에 같은 예수쟁이로서 실망하고 있다는 얘기도 썼고, 하지만 여전히 신앙의 순결함을 지키는 많은 동료 예수쟁이들의 모습도 보면서 위로도 삼고 또 이런 예수쟁이들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
일단 우리 사회에서 소외 받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해서 한번 써 보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10년 전의 우리나라의 장애인 교육이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죠. 특히나 자폐라든가 정서장애 같은 경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엄마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기 일쑤였고, 이들 정서장애인들을 위한 학교 건립도 경기고등학교 근처에 들어선다는 이유로 경기고 동문들에 의해 압력을 받고 계획이 백지화 될 정도로 사회의 인식이 열악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래 댓글을 달아 주신 많은 분들께서 목사들이 돈만 밝히고 있다고 비난을 하시는데.
남서울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님 이야기를 좀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10년도 전인 1996년에 남서울교회의 담임목사이시던 홍정길 목사님이 3천명에 달하는 교인들 앞에서 장애인 특수학교인 밀알학교에 헌신하기 위해서 교회 담임목사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하셨죠.
소위 서울에서 대형교회의 내막을 조금 이라도 알고 계신 분이라면, 강남일대에서 3천명 교인을 확보한 교회가 뭘 의미하는지 다 아실 겁니다. 구반포와 신반포 사이에 위치한 남서울교회에 당시 3천명의 신도수라면 어디에 내어 놓아도 대단한 교회인 거죠.
더군다나 당시 홍정길 목사님은 ‘헌금은 내 것이 아니고 어려운 이웃의 것이며 교회예산의 70%는 교회 밖의 구제와 선교에 써야 한다’는 목회방침을 갖고 계신 걸로 유명했죠. 그리고 남서울교회 담임 목사직을 사임하며 받은 퇴직금 전액도 특수학교인 밀알학교 건립 자금으로 전액 기부를 했고요. 결국 이 교회를 통해 100억이 넘는 밀알학교 건립 자금이 조달되었고, 현재 이 밀알학교를 통해서 수많은 장애인들이 새 삶은 찾아가고 있답니다.
지금은 남서울교회의 자교회인 남서울은혜교회를 담임하시면서 지속적으로 밀알학교 후원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한국 교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 많은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겁니다.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하고 삐까뻔쩍한 양복을 입고 시청 광장에서 주한미군이 꼭 남아 있어야 한다고, 또 현 정부는 빨갱이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그런 목사를 담임 목사로 섬기며 울며불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예수쟁이인 제 입장에서도 구역질이 납니다.
하지만 위에 홍정길 목사님처럼 교회 예산을 70% 이상 구제와 선교에 쓴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교회의 경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작지만 단단한 근거지가 되기도 한답니다.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섬기는데, 인간적인 약점과 결점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리가 없죠.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 보시다시피, 약간이라도 권위주의가 침투하는 순간 교회는 타락하기에 아주 완벽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된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약점과 실수를 가지고도, 꾸준히 하나님 사랑을 펼치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예수쟁이들이 있는 것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이번 아프간에 간 젊은이들 같은 단기선교도 있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식구들 모두를 데리고 국내외의 좋은 자리를 떨쳐 버리고 목숨을 걸고 남미나 아프리카로 선교 하러 가는 수많은 선교사 부부들이 있습니다. 아래 댓글을 보니 이들 선교사 가정을 내막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무슨 명예나 신분 상승의 길쯤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모양인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에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요… 하도 싸질러 놓는 생각 없는 예수쟁이들과 목사 덕에 신앙의 모범이 되는 분들의 모습까지 가려지는 것 같아 맘이 답답하네요.
독일 얘기 하나만 더 하고 물러가겠습니다.
나치가 집권하고 전 독일이 차례로 전체주의 시스템 하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유태인과 종교 탄압도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고요. 소위 아리안 법령이라는 걸 통해서 자행되는 무참한 유태인 처형에 기존의 루터파 교회 대부분이 침묵하게 되죠. 하지만 디트리히 폰 회퍼 목사님 같은 분을 중심으로 고백교회라는 것이 조직이 되고 반나찌 운동이 태동되게 됩니다.
현재 한국의 기독교 상황은 어찌 보면 나찌 치하의 독일의 기독교 상황과 비슷할 지도 모르죠. 이데올로기와 돈, 권력이라는 마치 나찌와 같은 모습의 부폐상들이 판치는 가운데 독일의 폰 회퍼 목사님 같은 분들이 중심이 되어 독일내에 고백교회가 만들어지듯이 우리나라에도 개신교 쪽에 개혁의 큰 바람이 불기는 불어야 할 겁니다. 이번 사건이 그 시작점을 조금은 앞당기기를 바라는 맘도 있고요.
그럼….
사족 1: 이사야님께
새벽 3시에 올리신 노짱방 글을 읽었습니다. 저 같은 평신도보다 목사이신 이사야님께서 느끼시는 위기감이 더 크시겠죠. 하지만 아마 이사야님도 아실 겁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의 정신을 따르려고 힘써 노력하고 실천하는 수많은 예수쟁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겁니다. 기도하죠… 참… 힘내세요…
사족 2: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서프에 글을 올린 후 제 글이 대문으로 가지 않기를, 그리고 되도록이면 적은 분들이 읽게 되기를 바란 첫번째 글입니다. 그만큼 현재의 상황이,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수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벌어지는 수 많은 광적인 행동들과 비이성적 행동을 보이는 기독교의 모습이 예수쟁이인 저의 눈에도 부끄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등 뒤로 하고, 원래 성경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다고, 교리상으로는 반대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그게 누구에게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저 역시 제가 쓴 이 글을 보고 다시 한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의 지난번 글이 당파성에 관한 글입니다. 이번 글에 저의 당파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어제 포탈사이트에서 '두타스님의 굴욕'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민들레밥집'이라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시며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두타스님께서 탁발을 하는 현장에서 붉은 조끼에 십자가를 든 양반이 두타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이 나오더군요.
정말이지 예수쟁이로서 참담하다는 말 밖에는 못하겠더군요.
맞습니다. 현재 기독교, 특히나 개신교쪽은 문제가 많은 정도가 아니고, 판이 완전히 뒤집혀져야 하는 상황 맞습니다.
제가 한 2년반 정도 워싱턴 디씨에 거주한 적이 있답니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종교 담당 관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1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오셨죠. 국내 종교를 담당하시는 분인데, 제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시더군요. 국내 종교별 자선시설과 자선비용을 조사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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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천주교, 원불교에 이어 개신교가 4위 더군요. 개신교쪽에서는 1천만명 운운하는 신자수에 자선비용은 겨우 4위입니다. 원불교의 교세와 개신교의 교세가 비교나 됩니까? 하지만 개신교쪽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나 각종 자선단체에 투자되는 비용은 참담한 지경이었습니다.
개독교라고 비난하시는 많은 분들의 비난과 지적을 모두 수용합니다. 여러분께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지적에 감정이 실려 있건 말건... 예수쟁이로서 모두 감내하고 또 그 지적을 바탕으로 현재 예수쟁이들의 각성과 반성을 위해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일 때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머나먼 객지에서 삶을 마감하시게 된 젊은 목사님의 죽음에 조의를 표함니다. 나머지 분들이나마 안전하게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