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미국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역사 속의 힘의 정당성과 그 책임감에 대해
2007년 8월 3일 서프에 올린 글
1. 서론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 이번 아프간 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한 기자의 기사가 나왔더군요. 이 기자를 포함해서 슈퍼 파워인 미국이 좀 힘을 써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도 많을 겁니다. 의원 나리 몇 분도 미국에 약속도 잡지 않고 가시던데…… 뭐 무슨 생각으로 가시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기는 하지만. 어차피 미국 애들 보라고 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국내용인 거 서로 다 아는 처지에....
북한도 한마디 거들어 주더군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위기상황에서 미국에 얼마나 많은 걸 기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미국은 지금까지 그걸 우리한테 해줬었는지.. 그런 역사적 사실 관계를 따져보고 나면 이번 일에 관해서 미국에 얼마만큼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지..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전에 한미 간의 전시 작전권 환수에 관한 논쟁이 한창일 때, 지금까지 우릴 지켜 주던(?) 미국에 정이 많이 든 보수적인 양반들(한기총 같은 보수적 기독교 단체를 포함해서)께서는 미국의 알뜰살뜰한 보살핌(?)에 대한 기억이 돈독하시던데, 한번 제 기억이랑 맞춰보죠.
2. 본론
역사의 시계를 한 30년쯤 돌려 봤습니다. 지금이야 우리의 힘이 동북아에서 다들 인정해 줄 정도이지만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 사이의 우리의 위상은……
참~~~ 민망했더랍니다. (-.-;)
군사 쿠데타 일으켜 정권을 잡은 장군이 집권한 나라… 반쪽인 북한은 경제적 부흥과 군사적 위상이 급성장하고 있을 때, 3선 개헌과 유신 개헌으로 독재 체제는 공고해 지고 나름대로 경제력이 발달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술력과 생산력,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북한에 한참 뒤떨어져 있던 시기죠. 해군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군사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해군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당시 북한의 조선공업은 대한민국보다 월등히 앞서 있어서, 선박용 엔진을 포함한 각종 선박을 제작하고 있었고, 심지어 잠수함까지 자체 건조할 실력이었죠. 당시 북한 해군의 고속정은 35노트의 고속 운항이 가능한 반면 우리 해군의 경우 미국 해군이 쓰다 퇴역시킨 구식 함정에 심지어 일본 해군이 이차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함정까지 그러모아 운영하고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당시 우리 해군은 심지어 우리의 영해 상에서조차 북한군의 도발에 속수무책이었다고 보셔도 크게 틀린 얘기가 아니던 시절이죠.
이제야 참 세월이 좋아졌지만..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의 당시로써는 우리의 가난한 어부들이 고리대를 얻어 어렵게 마련한 출어자금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만선의 기쁨을 가득 안고 귀항하는 것이 우리나라 살림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기입니다.
역사는 돌고 또 돌죠? 지금은 북한 해군이 매년 5-6월의 꽃게잡이 철만 되면, 연평도 근방에서 북한 어부들에게 한 마리의 꽃게라도 더 잡게 하려고 대한민국 해군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
자.. 이제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갑니다.
1970년 6월에 서해안 연평도 부근 공해상에서 어선단 보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우리 해군의 120톤급 방송선을 북한 해군이 공격을 해서, 승무원 20여 명을 대부분 사살한 채 납치합니다.
이게 뭔 말인고 하면, 당시 우리 해군은 지금의 북한 해군처럼 먹고살기 팍팍한 아버지나 형님뻘의 우리 어부들에게 단 한 마리의 꽃게라도 더 잡게 할 욕심과 또 이들을 보호할 요량으로 매년 꽃게잡이 철에 군함을 파견해서 북한 해군의 눈치를 봐가며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 꼴을 못 보고, 북한 해군이 무력을 행사한 거죠.
이게 첨 있던 일은 아니고, 명태잡이 철인 겨울이면 동해 쪽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사고였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기 3년 전인 1967년 1월에는 강원도 거진 동쪽 해상에서 명태잡이 어선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초계 호위함(PCE-56, 650톤급)이 북한 해안포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합니다. 승조원 79명 중 39명이 전사하죠. 얼마 전 서해 교전과는 비교도 안 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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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해안포의 포격을 받고 침몰하고 있는 해군 초계 호위함 | ||
뭐 북한으로서는 영해 침범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당시 상황은 북한이나 우리나 뻔한 상황이랍니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기름 사서 출항한 어민들 입장에서 눈앞에 명태 떼가 보이는데 북한 수역이 가까워지는 걸 의식할 겨를이 없는 거고. 이걸 무작정 막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우리 어선들이 북한군에 납북되어 가는 걸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우리 해군 입장에서도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게 되는 거고.
여기다 대고 해안포를 발사해서 격침을 시키고 나중에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북한도 얄밉기는 마찬가지죠.
자~~~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당시 수만 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던 미군 당국의 반응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건 당일 바로 판문점을 통해서 미군의 치콜렐라 소장이 항의하고 규탄을 했습니다만, 그런 립서비스가 전사자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런지요.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우리 군에서는 당시 해군참모총장이던 김영관 제독이 기자 회견에서 ‘앞으로 어떠한 북괴의 도발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식의 어민 보호를 위한 우리 해군의 활동이 북한 해군의 공격을 받는 건, 우리가 자체적인 힘을 기르기 전인 70년대 중반까지는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1974년 6월에도 동해안 거진 앞바다에서 북한 해군 함정 3척의 공격을 받고 우리 해경 경비정이 격침되는 사건이 일어나죠. 이번엔 오징어잡이 어선 보호하다가……(-.-;)
이런 식으로 우리 해군이 공격을 당하고 병사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앞으로는 ~~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거……
힘이 없다는 건 이런 겁니다.
3. 결론
자.. 결론 들어가 보죠.
당시의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적인 패권국이라고 해서 저런 사건에 따로 힘써줄 건덕지는 별로 없습니다. 자신의 패권 안에 소속된 국가와 국민에게 립서비스 정도죠. 거기다 대고, 죽은 사람들이 미국 사람이었다면 미국 너희가 이렇게 한가하게 립서비스만 하고 있겠냐고 미국에 투덜대 봐야, 피차 뻔한 사정에 민망하기만 한 거죠.
미국이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미군의 아프간 진주 초기와 달리 다시 탈레반이 득세하는데 미군의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행동들이 크게 일조를 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 글은 현재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한계에 대한 실제적인 견적을 우리의 지난 경험에 근거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제 대충이라도 미국에 무엇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견적이 잡히셨을 걸로 믿습니다.
첨언: 아래 댓글에 한 분께서 도대체 주제가 정확히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셔서 다시 읽어 보니 그 지적이 맞네요. 하고 싶은 얘기는 준비도 없이 미국행을 강행하는 한심한 일부 의원들과 미국이라면 뭔가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얕은 국제 감각을 갖고 미국 대사관을 찾아 나서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비판한 겁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대규모 전쟁이라면 모를까 판 자체가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미국은 실제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거라는 저의 주장을 담은 글입니다. 그런데 정작 결론은 아주 짧으니… 그런 지적을 받을 만 하네요. 글을 재미있게 쓰려고 준비한 자료를 다시 읽다 보니, 북한의 예전 행태가 괘씸해서 오히려 후기가 더 길어져 버렸으니 그런 지적을 받아 마땅하죠.
4. 후기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에 대한 제 소회를 한마디 적고 싶네요.
어찌 되었건…… 결국 북한 해군의 저런 치사한(?) 짓거리가 중단되기 시작한 건 나름대로 우리 해군력이 증강되는 시기와 겹칩니다.
사람 다 죽고 나서 항의를 하고 규탄을 하면 뭐 합니까? 그리고 한 주먹감도 안 되는 당시 처지에 악이나 깡으로 버텨봐야 피만 더 보는 거고…… 결국 내게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힘이 생겨야 저런 일이 터지는 거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거죠.
얼마 전에 개성 공단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시한 북한 도발 유인 작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북한에 우호적인 분들이 제게 그와 같은 박통의 지시에 대한 저의 견해를 물어 오셨습니다.
저는 당시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라는 박통의 지시는 무척이나 모험주의적인 내용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였다고 생각하며 만약 당시 제한적인 국지전일지라도 한반도에서 분쟁이 재발했다면 그건 분명히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었을 거라고 말씀을 드렸죠.
지금은 북한이 쪼그라들어서 연평도 근해에서 제한된 시기나마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고 하죠? 세상이 이렇게 돌고 돕니다. 어린 시절 같이 쓰는 책상에 그어 놓은 선을 넘어오면 쌀쌀맞게 대했던 짝꿍처럼 치사하게 먹는 거 가지고 대포까지 쏴대며 우리 해군이나 해경 함정 격침시켰던 북한이 이젠 반대로 우리의 양해와 협조를 구해야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됐습니다.
화해와 용서는 힘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약자에게 화해와 용서란 굴종에 대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DJ와 노무현 정권 10년에 걸쳐 우리는 군사력과 경제력 모든 분야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환경에서 북한에 평화공존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리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한이 앞서 있던 시절인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에, 지금 우리가 연평도 근해의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고려하듯이, 북한이 좀 더 관대히 우리 어민들과 해군의 활동을 이해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금 넘어왔다고 손등을 때리는 깍쟁이 짝꿍처럼 포격을 해서 격침시키는 대신에 말입니다.
그 10년의 시절에 북한이 지금 우리 정부가 펼치는 햇볕 정책처럼 우리에게 군사적 압박대신에 평화적 제스처를 지속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올 초에 쓴 글 하나에 북빠 분들이 달아 주신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것만큼...... 또한 충분히 그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워.”
네.. 맞습니다. 북한에도 충분히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부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힘의 우위를 갖고 있던 시절, 평화 공존보다는 힘자랑으로 허비한 세월만큼은 그들은 역사와 민족 앞에 잘못을 한 거죠.
그리고 박통이 판문점도끼만행사건을 이용해서 북한을 도발한 계획이 모험주의적이고 대단히 위험한 판단이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당시 북한의 쌀쌀맞은 힘자랑은 민족의 이름 앞에 심각하게 모험주의적이고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힘이 있다는 것에는 책임감도 따릅니다. 북한이 60년대와 70년대에 허비한 시간이 안타까운 반면에 지난 10년간 안팎의 비난 속에서도 힘자랑하지 않고 평화 공존 정책을 추진해 온 DJ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내고, 또 그들을 지지하고 대통령을 만들어준 우리 민족 역시 역사 앞에서 자랑스럽습니다.
사족: 저 역시 제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인식합니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의 기간에 제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은 군사적으로 호전적이었고 심각하게 모험주의적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나 조갑제 같은 꼴통 보수들처럼 말이죠. 혹시 모르죠. 당시 북한이 지금의 우리처럼 햇볕 정책을 추진한 것이 있을지도. 북빠 양반들 중에서 그런 내용을 알고 계시면 댓글을 통해서 소개해 주세요.




